[시선뉴스 김태웅 기자/디자인 이연선]

▶요한 크루이프 (Johan Cruyff)
▶출생-사망 / 1947.04.25. ~ 2016.03.24.
▶국적 / 네덜란드
▶활동분야 / 스포츠 (축구)

과거 축구는 네모난 골대에 골을 넣기만 하면 되는 스포츠였다. 때문에 그 어떤 과정을 거치든 득점한 선수가 최고였다. 물론 현재도 골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골을 만들어 내는가도 함께 중요시 되고 있다. 토탈사커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현대 축구로 변모하게 된 지금, 그 중심에는 완성형 축구 선수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 축구에서 ‘토탈사커’란?
‘토탈사커’란 11명의 선수들을 공격과 수비의 큰 구분이 없이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최전방에 위치한 공격수라도 공을 빼앗겼을 땐 수비수이고, 최후방에 있는 골키퍼라도 공을 가지고 있을 땐 전진하는 공격수라는 것이다. 과거엔 축구 그라운드 공간을 한 두 명의 공을 잘 다루는 선수가 돌파하는 공간으로 이해했다면, 현대축구에선 11명이 유기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토탈사커 방식이 플레이 되고 있다.

- 현대 축구로의 전환, ‘토탈사커’ 탄생
사실 ‘토탈사커’라는 개념은 요한 크루이프가 만든 것이 아닌 20세기 최고의 축구감독으로 평가받는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제안한 축구개념이었다. 미헬스 감독은 공간에 대한 색다른 이해로 ‘토탈사커’를 제시했고, 당시 그의 제자 크루이프를 통해 이 개념을 현실화시켰다. 스승과 제자로서 아약스에서 처음만난 그들의 인연은 이후 바르셀로나, 국가대표팀에 까지 이어졌다. 미헬스 감독은 축구선수로서 갖춰야할 모든 신체능력을 갖춘 크루이프에게 그의 ‘토탈사커’를 가르쳤다.

-축구의 정의를 만들어간 완성형 선수 크루이프
축구 개인기술 중 ‘크루이프 턴’이라는 기술이 있다. 상대 수비가 앞에 있는 가운데, 한 쪽 방향으로 유인하고 뒷발로 180도 반대방향으로 급전환하는 기술이다. 크루이프가 상대 수비를 두고 자주 사용해 유명해져 크루이프의 이름까지 붙은 기술인 것. 그만큼 선수로서의 크루이프는 공격과 수비 스피드 볼 소유능력 등 모든 축구능력을 갖춘 완성형 선수였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했고, 유러피언 골든슈 1회,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무려 7번(올해의 스포츠선수상 포함)이나 수상 그리고 그해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특히 발롱도르상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받을 수 있는 상이며, 현재 메시와 호날두 선수가 각각 5개, 4개로 더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두 선수 이전에는 플라티니와 함께 최다 횟수 수상자였다.

- 선수에서 감독으로, 두 분야 모두 성공한 몇 안 되는 축구인
크루이프는 1984년 고국 네덜란드 리그 팀인 페예노르트에서 마지막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생활을 은퇴하였고 그 다음 해에 자신의 축구선수 커리어를 시작했던 팀 아약스 감독으로 데뷔했다. 데뷔 해를 제외하고 2년 동안 컵 대회 우승을 3회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크루이프는 1988년부터 선수시절 자신 커리어의 황금기를 보냈던 FC바르셀로나를 맡게 된다. 아약스에서부터 바르셀로나까지 딱 2군데 프로팀만 지도한 크루이프, 자신을 통해 ‘토탈사커’를 추구했던 스승 미헬스 감독처럼 그는 펩 과르디올라, 호마리우, 로날두 쿠만과 같은 제자들을 통해 토탈사커를 구현했다. 바르셀로나는 미헬스 감독이 맡았던 1984년 시즌 이후로 5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다가, 크루이프 감독 선임 이후 4년 연속 리그 우승을 한다. 또 현재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1992년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하며 감독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크루이프는 2009~2013년 까지 까탈루냐 감독을 끝으로 감독직을 은퇴했고, 2016년 3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는 없지만 지금도 펩 과르디올라, 로날드 쿠만 감독과 같은 감독들은 크루이프의 축구철학을 이어가면서 한 단계 발전시키고 있다. ‘토탈사커’를 직접 뛰면서 실현시키고, 지도자로서 제자들에게 전파한 ‘토탈사커’의 아이콘 요한 크루이프. 그는 축구역사에 있어서 혁명가이며 통찰가이자 전설로 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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