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2007년, 스마트 폰 자체로도 신기했던 당시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는 생소한 물건이었다. 당시 이러한 신생 사업에 핏빗이라는 업체가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인 건강과 접목한 헬스 웨어러블 기기를 출시하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미 헬스케어 분야에는 확고한 기업들이 있고, 핏빗의 제품은 생소한 분야라 성공을 불투명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벤처기업 핏빗은 이런 우려를 종식시키며 8년 만에 점유율 68%를 기록, 현재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에서 애플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기업이 되었다. 핏빗의 수장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박은 어떤 신념으로 기업의 노를 저은 것일까?

[사진/핏빗(fitbit) SNS]

아이디어는 먼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생활의 발견

하버드대 컴퓨터 공학과를 중퇴한 제임스박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세계적 게임기 ‘위(Wii)’를 즐기던 도중 몸매가 망가진 채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망연자실 했다. 하지만 상심은 곧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작감지 센서와 게임을 접목한 ‘위’에서 착안해 각종 센서와 결합한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기로 한 것. 그것도 건강을 관리해주는 착한 기기를 말이다. 이것이 핏빗의 탄생 초읽기였다.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헬스 케어 웨어러블 기기를 구상한 제임스박은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 자본금 마련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 개발에 앞서 2008년 세계 최대 신생 벤처기업 콘퍼런스에 시제품을 소개하고 사전 주문을 받았다.

쉬운 것은 없다, 난관은 두발로 뛰어넘어

그런데 여기서 난관에 부딪힌다. 애초 제임스박은 사전 주문 수량을 50개 정도로 예상했는데, 무려 2000여개 까지 주문된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2000개를 생산해 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제임스박은 이때를 회상하며 “정말 순진한 행동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소프트웨어 출신인 제임스박은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능력 있는 하드웨어 전문가를 찾아 두발로 뛰었고, 생산 공장을 찾기 위해 또 뛰었다. 그 결과 사전 주문을 받은 지 1년 만에 제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제임스박 [사진/핏빗(fitbit) 홈페이지]

기업의 숙명, 끊이지 않는 과제를 잘 풀어내야

그렇게 어렵게 개발/생산/유통망까지 구축한 제임스 박. 그는 이제 안정적인 사업을 기대했지만 정말 중요한 과제가 또 들이닥쳤다.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라는 신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생산/유통사들도 그 개념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때문에 늘 ‘그게 소비자에 호응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제임스박은 자신이 CEO라기 보다 개발자로서 그런 의문에 하나하나 설득해 나갔다. 그리고 제품력으로 이해를 점차 시켜나갔다.

성공의 필수 조건은 적절한 시기, 적절한 가격, 사후관리

제임스박의 부단한 노력에 척박했던 웨어러블 시장에 핏빗은 직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출시 5년만에 28개국 3만여개 매장에 진출한 것은 물론, 헬스케어 시장을 주름잡던 ‘나이키’를 추월하고, 스마트기기 강자인 애플을 맹추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확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한 ‘열정’과 함께 적절한 시기와 가격을 꿰뚫어본 그의 ‘선견지명’이 큰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구매한 고객에 대한 꾸준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 사후관리도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라는 생소한 사업에 당당히 발을 들여 벤처 기업의 힘을 보여준 핏빗의 수장 제임스박. 그의 성공 사례가 높게 여겨지며 벤처기업 중 유일하게 '국제가전전시회(IFA) 2017'에서 기조연설 강연까지 맡았다. 제2의 도약을 위해 움츠리고 있는 핏빗의 다음 날개 짓은 세계에 또 어떤 반행을 불러 올까. 핏빗이 제시하는 미래에 지구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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