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어느 사회든 사회 갈등은 있기 마련이지만, 대한민국은 사회 갈등 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갈등 요인이 복합적인 데다, 무엇보다도 갈등 관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등을 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국회와 정당들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형국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사회 갈등의 심각성을 잘 웅변해 주고 있다. 최근 들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록 공개를 둘러싼 여-야 간, 좌-우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사회 갈등이 상존하더라도 대체로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런 사회경제적 이슈가 중요한 국가적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예시한 종류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싸움이 민생 이슈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크다. 60여 년에 걸친 대한민국 현대사의 전개 자체가 대단히 치열했고, 진영 간의 앙금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싸움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세계는 동-서 냉전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이데올로기 경쟁은 사실상 종언을 고한 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작금의 대한민국이 맞이하고 있는 갈등 양상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이것은 좌-우 정치권과 운동권이 각각 20세기 극한 시대의 산물인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상대를 ‘악(惡)’으로 규정하며 매도하는 태세이다. 그 이데올로기란 것도 1920년대의 좌파 민족주의와 1950년대의 반공주의의 아류(亞流)에 다름 아니다. 전자는 미국과 그 추종 세력이 문제이고, 후자는 북한과 그 추종 세력이 문제라는 식이다. 물론 각 진영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그 다수는 나름대로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고 대다수 국민들은 진영 의식조차 희미하지만, 문제는 극소수 근본주의자들이 각 진영을 주도하면서 사회 분위기를 양 극단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 진영의 약점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이를 침소봉대해서 끝장을 보려는 관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상식적인 국민들이 볼 때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북방한계선(NLL)은 차치하더라도 전반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입맛에 맞추려고 했다는 비판을 면할 여지가 없다.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연출과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했겠지만,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는 좀 더 단호하게 입장을 밝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북한에는 문제가 없고 미국과 대한민국 내의 보수 세력이 문제’라는 인식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란 대의(大義)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세계로부터 외면 받고 있던 북한 지도자에 대한 발언 치고는 과례(過禮)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했지만, 이 시점에서 다른 걸 제쳐두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것도 적절했는지가 의문이지만, 좌-우 정치권과 언론이 그 내용의 해석을 둘러싸고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둔하는 좌파 진영이나, 이번 기회에 노 전 대통령을 넘어 좌파 진영 전체를 코너로 몰겠다는 우파 진영의 태도 모두 피장파장이다. 국민 여론이 어느 쪽에 더 많이 우호적으로 가담할지는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우열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다수의 국민들만 피해를 입을 따름이다.

   여-야 혹은 진영 간 대립이야 늘 있어 온 일로서 대수롭지 않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로 날을 지새우다 보면 민생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세계 경제 체제는 위기 국면에 들어가 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국정을 뒷받침해야 할 여-야 정당들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급행열차처럼 정면충돌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되기가 어렵다. ‘과거에 매몰되면 미래를 잃는다.’는 격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는 시점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들은 낡은 시대의 산물이다. 때문에 낡은 문제를 갖고 낡은 방법으로 경쟁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정당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갈등 양상을 피할 길이 없고,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기도 어렵다. 주지하듯이 ‘안철수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새로운 길’과 ‘민주당과의 연합’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은 ‘안철수의 길’이 아니다. 뜻있는 국민들이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를 아직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는 한, 안철수 의원에게 미래란 없다.

   기존 정당들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은 반드시 안철수 의원에게서부터 오라는 법은 없다. 지금 20~40대의 상당수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더 지나면 새로운 대안 세력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철수 의원에게 소중한 역할이 있다면, 대통령 당선에 연연하지 말고 낡고 병든 정치를 혁신하는 데 밀알이 된다는 심정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과 연합한다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수월하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는 것일 뿐이지 새로운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운명도 억울한데, 대한민국 정치권이 철이 한참 지난 이데올로기에 포박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동토(凍土)의 왕국’에도 봄은 오겠지만, 대한민국 내부가 심각한 국론 분열 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상, 통일의 과정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남북 통일 이전에 남남 통일이 시급한 이유이다. 국론의 통일이라고 해서 획일적인 가치관이 지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더라도 이것들이 평행선을 긋거나 충돌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렴(收斂)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만이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우뚝 설 수 있고, 민족 통일 또한 앞당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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