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6월은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달이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1987년의 6월 항쟁 역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대한 분수령임에 틀림없다. 거기다 4년 전 5월 하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민주당 등 야권은 추모 집회 정국을 6월까지 이어 왔다. 5년 전, 이명박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던 촛불 집회도 6월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된 바 있다.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민주당이 급기야 장외 투쟁의 강수를 선택함으로써 역시 6월은 ‘잔인한(?) 달’인가 보다.

   작금의 대치 정국은 대한민국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북방한계선) 발언 내용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해서는 지금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으므로 그 귀추에 따라 야당이 대응 방향을 정하면 된다. 야당으로서는 검찰 수사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국정 조사를 요구할 수는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도 국정 조사에 반대하지 않아 국정 조사는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록을 여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장이 공개함으로써 상황이 급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논란을 두고서는 발언록을 공개하자는 새누리당과 이에 사실상 반대하는 민주당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민주당이 발언록 공개를 주저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부적절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가 있다. 물론, 남북 간의 신뢰를 염두에 둔다면 공개를 하지 않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있음직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언론을 통해 그 발언의 핵심이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일 실익은 그 어디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지금 여·야는 6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놓고 있다. 주지하듯이 6월 임시국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민생법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외 경제 사정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회는 민심을 다독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끝장을 볼 태세이다. 두 의혹 사건 모두 겉으로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큰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호들갑을 떨 사안만도 아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지금까지 드러난 양상으로만 본다면 조직적인 개입이라기보다는 일부 공직자의 몰지각한 일탈 행위의 산물이다. 물론, 그동안 간헐적으로 있어온 잘못된 소행을 엄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법대로 처리해도 좋을 일을 대여(對與) 투쟁의 소재로 삼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는 오해를 받을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좋게 보면 남북 간의 거리 좁히기 차원에서 했을 발언이지만, 대통령의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은 국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다고 해서 NLL이 변경될 수도 없고, 실제로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말하자면 지금 와서 그 발언의 진상 여하를 따져봐야 국가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여당으로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민주당의 과도한 대응에 맞불을 놓는 심정이겠지만, 정국이 파행을 거듭할수록 그 부담은 정부·여당에 쏠릴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가 어떤 식으로 봉합이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민주당 등 야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서 정부·여당에 대한 투쟁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김한길 대표가 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강수를 두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은 안철수 무소속 국회의원이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선명성 경쟁’을 통해 야권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할 심산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안철수 신당’의 존재이유를 더 돋보이게 할 뿐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면 벌일수록 이른바 ‘안철수 현상’의 입지는 드넓어지게 마련이다. 요컨대 민주당으로서는 ‘전투에는 성공해도 전쟁에는 실패하는’ 쓴맛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회 내에서 해결책을 도모해야 할 원내 정당이 거리나 아스팔트를 향해 뛰쳐나가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있는 형국은 이 정당 스스로 정치를 부정하는 꼴임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의 시행착오를 딛고 본격적인 국정 운영에 나서려는 참에, 야권의 장외 투쟁이라는 복병(伏兵)을 만났다. 박근혜 정부가 이 이슈들에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야권의 화살은 박근혜 정부를 향하게 되어 있다. 민주당은 정치적 노림수를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지만, 막상 투쟁의 고삐를 당기는 순간 여기에 온갖 반정부 세력들이 참여할 여지가 많고, 주도권이 장외의 운동 세력에게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러다 보면, 이명박 정부 때의 촛불집회처럼 반정부 투쟁 국면이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국정 로드맵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타협을 통해 원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당 간의 경쟁이 국리민복을 향한 노선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익을 위한 다툼의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편이다. 특히 권력기관에 대한 투쟁을 능사로 삼는 야당과 안보 문제를 침소봉대하려는 여당의 관성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현되고 있는데, 그 어느 쪽도 대다수 국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지가 26년이 지났고, 13년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정치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시대의 이슈들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확립되었지만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민주의식은 여전히 빈약한 편이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진영 간의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양강 구도에서 오는 정면충돌 속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적인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래서 꼭 ‘안철수 신당’이 아니더라도 미래지향적인 제3당이 출현하여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정쟁(政爭)이 극심한 것은 후진적인 정치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 권력에 대한 집착과 반대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의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할 때가 왔다. 분권형 권력구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극한투쟁을 유발하는 대통령제보다는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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