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부산 영도구 ‘송덕비’ [지식용어]
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부산 영도구 ‘송덕비’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이승재 기자
  • 승인 2017.07.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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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정선 pro] 지난 2003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 130명의 인명 피해와 4조 2,225억의 재산피해를 남겨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역대급 태풍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도 매미의 강력한 비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부산 영도구에서는 태풍 매미로 인해 영도 여고 뒤쪽에 있던 비석이 모두 유실되기도 했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뒤 비석 4개 중 3개를 되찾아 복원했지만, 결국 1개는 찾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 이 때 찾지 못한 하나의 송덕비가 발견돼 화제가 됐다. 송덕비란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비를 말한다. 부산 영도구의 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던 상인이 바닷가 자갈 속에 묻혀 있던 기다랗고 평평한 바위를 발견했고,이를 영도구에 알린 것이다. 이에 영도구와 향토사학자들이 조사를 한 결과, 이 비석은 조선 말 왜구의 침략에 맞서 싸우던 수군 부대인 절영진 첨사 임익준의 공을 기리는 송덕비로 밝혀졌다.

이 비석에서 공덕을 칭송하고 있는 임익준이라는 인물은 1883년 8월부터 1년간 절영진을 이끌었던 장군이다. 임익준 첨사는 영도 봉래산과 동삼, 영선 등의 명칭을 지었고 가난과 병, 과중한 세금에 허덕이던 절영도(영도의 옛 이름) 주민들에게 어진 정치를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발견된 비석에는 ‘돈을 내려서 병든 이를 도와주셨고,곡식을 나누어 배고픈 이들 구원했네. 효의 길을 밝혀주셨고, 재앙을 막아주셨도다. 한 조각돌에 어찌 다 적으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처럼 어진 정치를 펼친 임익준이 절영도를 떠나고 2년 뒤인 1885년 임 첨사의 공을 기리는 비석 2개를 중리 바닷가 인근에 새웠다. 그리고 이곳에는 임 첨사의 송덕비를 비롯해 절영진 6대 첨사와 경상 감사인 이호준 관찰사의 송덕비까지 총 4개의 비석이 세워졌다. 이렇게 130년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오던 송덕비는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서 주변 건조물들과 함께 모두 유실됐고, 1개의 송덕비는 결국 찾지 못한 채 유지되다 이번에 14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영도구는 발견된 송덕비를 영도여고 뒷길에 세운 3개의 비석 옆으로 옮겨서 보존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산 영도는 조선시대에 말 목장이 있었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이곳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상당히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송덕비의 발견은 지역 역사에 대한 좋은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풍에 사라진 역사유물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사실 이번 송덕비 발견은 운이 상당히 좋았던 케이스로 평가되고 있다. 올 여름에는 8월까지 북태평양에서 태풍이 10~12개 정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 중 몇 개의 태풍이 한국을 향할지는 모르지만, 태풍으로 인해 또 다시 문화재가 유실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관리 당국의 철저한 대비와 관리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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