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 그 내용 모두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농서 ‘사시찬요’ [지식용어]
글자와 그 내용 모두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농서 ‘사시찬요’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이승재 기자
  • 승인 2017.07.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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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승재/디자인 이연선 pro]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농사’와 ‘글자’를 꼽을 수 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신의 식량을 경작해 안정적인 식재료 수급을 이뤘고, 글자를 통해 문화를 기록하고 계승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은 인류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농서의 등장, 그것은 우리가 더 양질의 농작물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최근 현존하는 농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농서가 발견됐다. 지난 6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서 농서 한 권이 발견됐고, 학계에서는 이 책이 조선 시대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한 ‘사시찬요’로 보고 있다. 사시찬요는 996년 중국 당나라 당시 한악이 편찬한 농업 서적이다.

이 농서에는 농업 생산과 농업 부산물의 가공, 농가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 방면의 지식을 광범위하게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해 봄 부분만 2권으로 이뤄져 5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부터 섣달까지, 매달 24절기에 필요한 농업 기술과 금기사항, 가축 사육방법들을 담고 있어 당시의 농업 환경과 생활 풍습 등을 연구하는 데 굉장히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농서이지만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도 초간본은 존재하지 않았다. 초간본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1961년 일본에서 발견된 책이 있지만, 그 책은 1590년 울산에 있던 경상 좌병영에서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책이 현존 최고본(最古本)인 사시찬요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시대 금속 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됐다. 계미자는 태종 3년 계미년에 만든 조선의 최초의 구리 활자다. 계미자라는 금속 활자는 그만의 독특한 서체인 송조체를 이용했는데, 최근 발견된 이 책이 송조체로 인쇄가 된 것이다. 이를 미루어볼 때 이 책은 이전에 발견된 사시찬요보다 2세기 앞선 1403년에서 1420년 사이에 인쇄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한, 중, 일을 통틀어 제일 오래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사시찬요를 두고 국보급 문화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책을 인쇄한 활자까지 상당히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계미자는 1420년 경자자를 만들 때 모두 녹여 썼기 때문에 계미자로 인쇄한 책은 굉장히 희귀하다. 실제로 계미자로 인쇄된 <십칠사찬고금통요>,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등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이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에도 귀중한 사료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서지학 측면에서도 활자 서체와 조판법의 연구에도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농사 기술과 인쇄 기술은 조선시대보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지만, 과거 조상들의 지혜 속에서 우리가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방면으로 굉장히 가치가 높은 ‘사시찬요’. 오래된 책인 만큼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존하고 연구해 우리에게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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