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에디터] 영국의 대표 화가 윌리엄 터너, 이탈리아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각 나라를 상징하는 화가들이 있습니다.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는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대표 화가인데요. 

네덜란드 자체가 ‘렘브란트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렘브란트는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후 황금시대를 맞이한 네덜란드를 화려하게 장식한 화가입니다. 그는 역사화, 초상화, 풍경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유화, 판화, 드로잉 등 회화의 모든 매체를 사용해 ‘렘브란트의 빛’으로 조명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출처/위키미디아)

중산층 집안에서 부유하게 태어난 렘브란트는 그림의 소질을 보이자 대학교를 그만두고 유명 화가 밑에서 그림 수업을 하며 도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도제 생활을 마친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작품생활을 했는데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수많은 자화상과 초상화 등을 남기며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렘브란트의 작품은 야간 순찰(The Nightwatch, 1642)이라는 작품인데요. 명성만큼이나 논란도 많은 작품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야간 순찰 외에 <야경>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고 부제목으로 <바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가 붙습니다.

이 그림은 1640년 무렵 국민병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가 렘브란트에게 자신의 부대를 묘사한 그림을 의뢰합니다. 렘브란트는 낮에 성벽에서 훈련하기 위해 무기고를 떠나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당시 군인들의 초상을 그릴 때에는 반드시 신분과 계급에 따라 인물을 배열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렘브란트는 이러한 규칙을 무시하고 대상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구성했죠.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출처/위키미디아)

검은색 군복에 붉은 띠를 두른 대위와 노란색 군복에 흰 띠를 두른 부관이 가운데에 배치돼 주목을 끕니다. 따뜻한 색인 황토색과 어두운 노랑을 기본으로 대위의 붉은 띠와 노란 군복의 부관, 왼쪽에 선 붉은 옷의 병사가 중심이 되고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소녀는 군인 일색의 화면에 색다른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죠.

또한 검은색 군복을 입은 대위의 새하얀 컬러도 그림 중앙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데요. 언뜻 보아 어수선한 장면이지만 그림 속 기다란 창과 깃발이 만들어내는 사선이 전체적인 균형을 이뤄 감상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대위와 소녀로 모으게 합니다. 또한 왼쪽의 광원으로 특정인물은 밝게 다른 인물들은 그림자 속에 잠기도록 한 것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죠.

이렇듯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기법을 키아로스쿠로 기법이라고 합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렘브란트의 그림들은 밝은 부분이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그 주위와 배경에 어두운 부분이 넓게 배치되어, 마치 어둠 속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밝은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 현재 우리가 보는 <야간순찰>은 렘브란트가 그린 원작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18세기 말에 암스테르담 시청 내부에 알맞은 크기로 축소되면서 원본에서 일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에 걸려있지만 미술관에 오기까지 과거의 전쟁을 피해 네덜란드의 시골-대장간의 창고-마스트리히트 근처 언덕 지하 동굴 방공호까지 옮겨 다니는 기고한 운명을 보냈었죠.

그렇게 무사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걸렸지만 이 마저도 두 차례의 우발적인 습격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는 1975년에 이 그림 속 코크 대장을 악마라고 믿은 한 남자가 조각칼을 휘두른 것이고, 두 번째는 15년 후에 한 남자가 그림 속 알레고리적 여성 인물에 산을 뿌린 것입니다. 이렇게 <야경>은 이러한 모든 역경을 견뎌내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그 영광스러운 화려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논란이 되고 후세에도 여러 번의 고난을 겪은 렘브란트의 ‘야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서 본다면 그 기분이 더욱 새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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