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뉴스]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유물, 역사적 궁금증을 해결해줄까? [시선뉴스]
[세컷뉴스]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유물, 역사적 궁금증을 해결해줄까? [시선뉴스]
  • 보도본부 | 이승재 기자
  • 승인 2017.06.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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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승재] 도심 한 복판에 왕릉이 있고, 문화재가 있어 도시 전체가 역사지구로 지정된 경주. 이곳에서 또 한 번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발굴이 진행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 3월부터 경주 월성 정밀 발굴 조사를 시작했고, 월성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그동안 우리가 품어왔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단초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것들이 발견됐을까?

첫 번째, 인주설화가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일까? ‘2명의 남성 유골’

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의 왕성이었던 월성 서쪽 문터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인골 2구가 발견됐다. 각각 키 166cm, 159cm 정도 되는 남성 유골 2구가 발견이 됐는데, 이 유골은 신라인이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것은 월성이 국내 최초의 사례다. 주거지 혹은 성벽의 건축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하는 풍습은 BC1,600~1,000세기 경 고대 중국에서 성행했던 것이다. 고려사를 살펴보면 왕이 민간의 어린이를 잡아다가 새로 짓는 궁궐의 주춧돌 아래에 묻으려 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인주 설화’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는 기록만 남아있어 실제로 그러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월성의 문터에서 두 구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이 인주 설화를 뒷받침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또한 유골은 당시 사람들의 체질적 특성이나 질병 및 건강 상태, 식생활 등을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유골에 대한 연구로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두 번째, ‘최초 & 최고’의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까? ‘병오년이 새겨진 목간’

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에서 발견된 두 번째 유물은 ‘최고(最古)’와 ‘최초(最初)’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성 서북쪽에서는 병오년이라고 새겨진 목간이 발견됐다. 목간이란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자를 새기기 위한 목편이다. 

이 목간에 새겨진 병오년이 과연 언제일까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만일 병오년이 526년(법흥왕 13년)이라면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목간이기 때문이다. 이 병오년이 법흥왕 13년을 뜻하는 것이라면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보다 앞서서 제작된 것이다. 

이외에도 총 6점의 목간이 추가로 발견이 됐는데, 여기에 적힌 글자를 바탕으로 신라 중앙정부가 지방 유력자를 통해 노동력을 동원하고 감시했다는 사실과 신라 왕경 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이두를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확인을 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삼국사기에서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관직명들이 등장하고, 당시의 동물과 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글씨도 발견돼 당시의 시대상을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신라 사람들이 당시 서역과 교류했을까? ‘소그드인 토우(土偶)’

출처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6세기 소그드인 토우도 출토가 됐다. 토우란 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의 인형으로, 이번에 발견된 토우는 팔까지 길게 내려오는 터번을 두르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터번을 두르고 있으며 팔부분이 소매가 좁은 카프탄을 입고 있다는 점과 허리가 꼭 맞아 신체 윤곽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이 토우는 페르시아 복식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의 형태를 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소그드인 토우가 발견이 됐다는 것은 이 당시에 신라 사람들이 서역의 소그드인을 알고 있고, 교역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계림로 보검, 황남대총 유리잔과 함께 신리와 서역의 교류사를 밝혀줄 귀중한 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경주 월성에서는 굉장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됐다. 돼지, 소, 개뿐만 아니라 곰의 뼈가 출토돼 당시에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고, 식물의 줄기와 잎, 열매 등도 발굴돼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를 얻게 됐다. 또 빗, 국자, 목제 그릇 등의 생활 도구와 건축 재료 등 굉장히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돼 5~6세기 신라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경주 월성의 발굴이 모두 끝나지 않은 만큼 앞으로 또 어떤 역사적 유물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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