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인간은 진화의 단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등등. 그리고 이러한 이름을 따 사회학에서도 인간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유희를 즐기는 인간을 일컬어 ‘호모 루덴스’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생물학적 발달 단계에 따라서, 또 새롭게 발견된 특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불리는 인간들. 최근 현대의 청춘들을 부르는 또 다른 단어가 생겨났다. 

호모스펙타쿠스. 바로 학력과 학점, 외국어 자격증 등 스펙(spec)에 매달리는 취업 준비생들을 말한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남들보다 더 나은 점수, 더 많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밤낮없이 공부하는 청춘들의 모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토익과 같은 영어 점수와 컴퓨터 활용 능력은 이제 없으면 안 될 기본 스펙이 되어 버렸고, 심지어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인 점수와 컴퓨터 자격증이 없으면 안 될 정도다.

출처 / 위키미디어

사실 ‘스펙’이라는 용어는 인간에게 붙는 용어가 아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스펙’을 검색해보면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친 것을 이르는 신조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스펙은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펙이란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기계의 성능이나 사양을 의미하는 말이다. 학력, 학점, 자격증 등이 인간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지면서, 마치 높은 학력과 성적, 많은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고성능의 사람이라 여겨져 ‘스펙’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다. 

과거에 비해 스펙 경쟁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대학만 나와도 취직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부모 세대들의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500대 기업 5곳 중 1곳은 아예 채용을 줄이거나 신규 채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채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년 졸업생까지 더해지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취준생들은 남들보다 더 높은 점수, 더 많은 자격증을 따려하고, 스펙 경쟁 또한 자연스럽게 더 치열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스펙경쟁이 치열해지자 기업들은 ‘무스펙’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스펙을 평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직무역량만을 평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무스펙 채용은 기업과 취업준비생간의 동상이몽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전히 기업들의 서류 전형에는 공모전, 인턴, 영어성적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존의 스펙을 요구하는 제도 속에 실무 역량을 평가한다고 하니,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서는 실무역량을 위해 또 다른 스펙을 쌓아야 하는 고충을 겪게 되는 것이다.   

취업난이 만들어낸 신인류, 호모스펙타쿠스. 호모스펙타쿠스는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이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한창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쓰여야할 청년들의 에너지와 열정이 자격증 개수와 시험 점수를 올리는 데만 쓰이는 것은 우리 사회에 큰 손해다. 청년들이 정말 본인이 원하는 일에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기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발전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채용 제도와 문화의 변화가 하루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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