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연선 pro]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나간다. 사회가 만들어진 설(說)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루소와 홉스 등 다양한 철학자들이 주장한 ‘사회 계약설’이다. 사회 계약설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연 상태에서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 자신의 자유 일부를 제한하는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즉, 법과 제도 속에서 자신의 자유의 일부를 제한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상과 운동을 총칭하는 말을 아나키즘’이라 한다. 즉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는 일체의 국가의 권력적 작용과 사회적 권위 등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제도와 관습을 거부하고,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지로 여기는 자유주의와 닮아 있다.

‘아나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됐다. ‘아나키’는 애초에 군사적, 정치적인 지도자의 부재를 뜻하는 말인데 고대 말기에는 디오게네스, 에피쿠로스와 같이 정치적 지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개인주의 사상이 존재했고, 기독교 내에서도 정치적 지배는 인간의 원죄와 함께 발생한 필요악으로 여겼다.

아나키즘은 인간은 누구나 본래 선한 존재로 태어난다고 본다. 그렇기에 인간은 본래 남을 해치지 않는 존재이고, 사회적 존재로서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관습이나 제도 권력이 인간의 자유스러운 삶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가 권력이나 제도에 의한 강제적 행동이 인간에게 거부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을 믿는 자들, 아나키스트들은 법질서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의 변화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식과 행동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지만 법질서에 의한 강제력의 발동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위를 방해한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 변화 과정은 외부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자연적인 느낌에 의해 표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나키스트들은 사유 재산 제도를 국가에 의해 창출된 최악의 제도로 본다. 사유 재산 제도가 생김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를 착취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대립하게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등장한 산업 문명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발전된 문명은 오히려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아나키즘은 보통 서양에서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도 아나키즘을 지향하는 철학이 있었다. 일체의 인위를 거부하는 도가 사상은 사실 무정부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도가 사상은 속세를 떠나 자연에 기대 사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도가는 국가의 개입이 없는 작은 나라에 적은 국민, ‘소국과민’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를 둔 사상이 과도하게 발현됐을 때, 아나키즘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과도한 자유의 존중이 만들어낸 사회의 무질서가 역사적으로 드러나면서 ‘아나키즘’은 정치적 지배가 없는 혼란과 무질서, 무규칙 상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사회 체제에 반발하여 일탈적 행위를 일삼는 성향으로 인지됐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존 질서와 사회 제도에 반감을 거지고, 법질서를 거부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다. 무정부주의를 꿈꾸는 아나키즘. 전 세계적으로 국가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는 요즘, 그냥 지나칠 사상은 아닌 듯 싶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