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칼럼니스트] 이제 ‘안철수 당선인’이라 불러야겠군요. 안 당선인의 국회 입성으로 향후에 상당히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그 최종적인 귀결이야 쉽게 예단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안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여론의 지대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안 당선인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동향을 논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안 당선인이 무소속으로 머무를 것인지,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과 제휴를 할 것인지 등등 향후 야권의 지형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지요.

 
   안철수 당선인에게는 원내 진입이 ‘양날의 칼’입니다. 도약의 기회이기도 합니다만,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대통령 예비 후보 시절에는 백면서생으로서 어느 정도 이미지 관리만으로 통용될 수 있었습니다만, 국회 입성 이후의 그의 행보는 여론의 날카로운 평가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당선인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의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실천력입니다. 그동안 안 당선인은 원론 혹은 당위론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 왔습니다. 이제는 그런 구상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현할 것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몸소 실천을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런 실천은 정당이란 틀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좌고우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힐 책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이 가기 전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가시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정치 세력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짐작됩니다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더라도 결국에는 민주당 등 야권 인사들을 대거 수혈하는 길 말고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민주당과 합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입니다만, 이것이 정치 발전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한민국은 한 사람의 지도자가 좌지우지할 만큼 간단한 사회가 이미 아닙니다. 안철수 당선인이 아무리 인기가 높고 좋은 정치 철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꿈이 성공할지 여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기업인으로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만,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안 당선인의 성품이나 그동안의 행적을 볼 때 과연 이 험난하고 복잡다단한 현실 정치 세계에서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역사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취지에서 안 당선인 나름대로의 꿈과 비전이 대한민국을 일신하는 데 일조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이 현상 자체는 대한민국 정치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당선으로 ‘안철수 현상’을 실체로 만들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안철수란 한 사람의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 현상은 시대착오적인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안 당선인이 이런 점을 의식해서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의 동지들과 바람직한 ‘집단 지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 당선인 개인의 특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라면 ‘사당(私黨) 정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안철수 당선인의 약진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 대한민국 정치를 대표하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거듭 태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안철수 그룹과도 의미 있는 경쟁을 하고,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민주당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은 작년 대선에서 어렵사리 승리한 이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5월 전당대회가 민주당이 다시 태어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계파 간의 권력투쟁 이상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의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대안이 없기에 대의 민주주의를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양대 정당이 번갈아가면서 사고를 일으킴으로써 당 간판을 내리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권력투쟁과 허장성세에는 능해도 참다운 경세제민의 도(道)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커다란 심각성이 있습니다. 요컨대 대리인에 불과한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주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거나 국민과 따로따로 놀고 있는 ‘대표성의 왜곡’ 현상이 나날이 심화되어가는 것이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입니다.

   안철수 당선인이 가장 주목해야 할 요소도 바로 이것입니다. 안 당선인에 대한 높은 지지는 그만은 국민을 잘 섬기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물론, 국민의 생각과 입장은 다종다양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치 지도자에게 더 더욱 사고의 유연성이 긴요하고, 대화와 타협이 이 시대의 중요한 정치 덕목인 것입니다. 안 당선인은 이른바 ‘중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습니다. 안 당선인의 중도 노선이 대세를 형성하려면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력과 통찰력을 갖추는 것과 함께, 그 비전과 정책 패키지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질의 인재들을 폭넓게 구하고 이들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안철수 당선인은 ‘안철수연구소’란 이름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그 자신의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홀로 리더십’이 수용되기 어렵습니다. 안 당선인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 밀알의 역할을 하겠다는 심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함께 리더십’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에게 쏠린 과도한 기대와 부하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안 당선인이나 그 그룹마저도 실패한 정치 실험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는 과도한 권력 집중 혹은 과부하와 이에 따른 권위주의 리더십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통치(government)가 아닌 협치(governance)의 시대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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