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 디자인 이연선 pro] 휴지는 한 칸만 쓰기, 변기 뒤 물탱크에 벽돌 넣기,몽당연필 끝에 볼펜대 끼워 쓰기 등. 모두 ‘절약’을 위해서 누구든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아니 들어 봤을 법 한 방법들이다. 상당히 빠른 압축 성장을 겪어온 우리나라는 ‘절약’은 필수 덕목 중 하나로 꼽혔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올라선 후에 이러한 절약 방법들은 옛날 어른 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절약 방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름하여 ‘냉장고 파먹기’다. 냉장고 파먹기는 음식 재료에 들어가는 생활비를 최소화하는 ‘짠 테크(짜다+테크)’의 일종이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 재료를 다 먹을 때까지 장을 보지 않거나 장보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냉장고 안에 방치되어 있던 재료들, 가령 명절 때 남은 전이나 음식들을 최대한 활용해 식사를 해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냉장고 속의 재료들을 활용하는 방법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냉장고 파먹기와 같은 ‘짠테크’가 트랜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활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이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을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가계 동향 자료를 살펴보면2016년 국민의 실질 소득은 0.4% 줄어들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은 가파르게 상승해 지난 1월에 가장 높은 수준인 2.0%까지 치솟았다.

물가는 오르는 데 소득은 감소하는 상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지갑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실제 지난 2월 평균 소비 지출은 1.5%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또한 한국은행이 조사한 소비자 심리 지수를 보면 올해 2월 소비자 심리 지수는 94.4로 나타났다. 소비자 심리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기준보다 이하면 비관적, 이상이면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지난 1월 93.3보다 1.1 상승한 수치지만 소비 심리는 여전히 비관적이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다보니 오히려 가계의 경기는 ‘흑자’를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 가계 월평균 흑자는 3.5%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는 치솟는 물가에 소비를 줄임으로써 가계에 남는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이다. 수치상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늘어났지만, 이런 돈은 불안 심리로 인해 시장에 풀리지 않고 대게 저축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금리 4%의 적금 상품에 매달4~5천 명의 신규 가입자가 몰리기도 했다.

소비는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최근 정부는 국내 소비 진작을 위해 소비를 늘리기 위해 금요일에 일찍 퇴근을 시키고, 주말에는 교통비를 할인해주는 등 여러 가지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비를 늘리기 보다는 ‘냉장고 파먹기’라는 새로운 절약 방법까지 사용해가면서 더욱더 소비를 줄이려 한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도입한 정책들의 방향성을 바꿔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돈을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고용 안정’이다. 소비자들이 앞으로 안정적으로 소득이 발생하고,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지갑을 열고 소비를 하게 된다. 언제 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계약직, 일용직들이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소비가 늘 수 없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에서는 부디 국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안정적으로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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