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모수진 인턴기자 / 디자인 이연선 pro]

▶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 본명_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 출생-사망/ 1890년 9월 9일~1980년 12월 16일 (90세)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기업인

커널 샌더스(Colonel Sanders, 한국어: 샌더스 대령)는 KFC를 창업한 미국의 기업인. KFC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가사와 생계를 도맡다
커널 샌더스는 1890년9월 9일인디애나 주헨리빌의 장로교집안에서 3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윌버 데이비드 샌더스가 다섯 살 때 죽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돈을 벌어야 했다. 그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요리를 도맡아서 하였으며 장성한 후에는 증기선선원, 보험판매원, 철도공사원, 농부 등 다채로운 직업을 거쳐 갔다.

7학년 때 학교에서 중퇴한 그. 직후 그의 어머니는 재혼한 의붓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인하여 집을 떠났다. 이 사건 이후에 그는 기록부를 위조하여 군대에 입대하였고 쿠바에서 복무하였다. 그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고 어린 나이에 죽은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 2세를 제외하고 슬하에 딸 두 명이 생기게 된다.

- 9년 동안의 요리 연구로 ‘켄터키 커넬’이라는 명예 호칭을 받다.
40세 때 커널 샌더스는 그가 켄터키 주에서 운영하던 주유소에서 손님들을 대상으로 한 닭요리를 개발하였다. 당시 그는 레스토랑이 없었기 때문에 주유소에 있는 그의 방에서 요리를 팔았다. 요리가 인기를 끌자 그는 '커넬 할랜드 샌더스 카페’라고 이름 붙인 카페를 개업하였고 이후 9년 동안 그만의 닭튀김 조리법을 개발하였다. 이때 그는 당시 널리 사용되던 팬 튀김 방식보다 조리시간이 빠른 압력튀김 방식을 개발하였다. ‘샌더스 카페’가 곧 여행자들의 명소가 됐고 샌더스는 마을의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자 1935년 켄터키 주지사는 그에게 ‘켄터키 커넬’이라는 켄터키 주 최고의 명예 호칭을 수여했다.

- 식당의 실패와 재도약
하지만 얼마 후부터 그가 운영하던 식당은 적자 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파산하고 말았다. 샌더스가 65세 때의 일이었다. 이때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사회 보장비 명목으로 켄터키 주 정부로부터 받은 100달러짜리 수표 한 장뿐이었고, 이후 그는 그의 요리법을 사줄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식당이 파산한 후 샌더스는 늙은 나이에 미국 전역을 돌며 치킨을 홍보했으나 1,008회나 사업자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끝에 1,009회째 드디어 후원자를 찾았다. 후원자는 웬디즈 올드 패션드 버거즈의 창립자인 데이브 토마스. 그 후 샌더스는 메뉴를 간소하게 하는 방법을 시행하여 식당의 메뉴를 프라이드치킨과 샐러드만 두었다. 이는 당시 패스트푸드계의 혁신적인 바람을 몰고 오게 했다.

- KFC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노력 시작
샌더스는 캐나다 지점을 제외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사(社)를 켄터키주의 사업가였던 존 브라운 주니어에게 당시 돈으로 약 2백만 달러에 처분하였다. 1965년 캐나다온타리오주의 미시소거로 옮긴 샌더스는 캐나다의 사업을 감독하며 사업 확장에 전력하였고 이후 미국과 캐나다를 왕복하며 KFC의 대변인격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 죽음과 유산
이후 그는 수익금을 '커넬 할랜드 샌더스 트러스트'와 커넬 할랜드 샌더스 자선협회' 라는 장학회와 자선단체를 조직하는데 사용하였다. 이들 단체에 모인 기금은 2007년 백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는 1980년6월에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았고, 12월 16일에 켄터키 주의 루이빌에서 폐렴에 걸려 90세의 나이로 편하게 눈을 감았다. 그의 시신은 켄터키 주 청사의 홀에 눕혀졌고, 남부 침례대학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수 천 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하였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정장과 검은색 넥타이를 맨 차림새로 루이즈빌에 매장되었다. 2000년 그의 이름은 미국 비즈니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하얀 정장 차림으로 프랜차이즈 점을 돌며 감독했다는 샌더스. 그는 그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실패를 모르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과 노년의 나이에도 사업 감독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은 성공에는 왕도가 없이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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