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朴槿惠)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열심히 일해 왔는데, 처음부터 꼬이고 있으니 말이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야당에게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뒤늦게 통과되었다. 명분도 실리도 잃은 셈이다. 또한 적임자라 생각하고 임명한 인사들이 취임도 하기 전에 줄줄이 낙마를 하고 있으니 굿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게다. 지지율이 낮다는 언론 보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만큼 노심초사(勞心焦思)의 한 달이었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처럼 어떤 언행으로써 구설수에 올랐던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야 원체 조신하고 말이 적은 편이라서 그럴 일도 별로 없겠지만, 실제로도 당선 이후 설화(舌禍)를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선자 시절은 물론, 취임하고 나서도 늘 조용한 행보이다. 너무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될 정도이다.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태도이다. 이런 점은 안심이 되고, 그래서 박근혜 정부에 대하여 기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공약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다짐도 수차례 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히 받들겠다는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워낙 큰 대한민국이기에 더 더욱 그렇다. 이런 원칙주의자의 면모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있다지만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에서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른 믿음직스러운 자질 때문에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또한 “조국과 결혼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강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박근혜 대통령이다. 마치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연상하게 한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애국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나아가 “대한민국을 반드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강한 사명감에 충만해 있다. 아버지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해냈듯이 자신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통해 뒤뚱거리고 있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어놓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야심차게 준비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하여 야당이 이런저런 시비를 걸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자신의 진정성을 곡해해서 시작도 하기 전에 딴죽을 거는 야당에 대한 분노가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야당의 견제는 도를 넘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이명박(李明博) 정부 때 했던 말을 뒤집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조변석개(朝變夕改)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일을 제대로 하려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야당은 전혀 엉뚱한 걸 갖고 방해를 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인사(人事)만 해도 그렇다.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통령 자신과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르고 골랐는데, 도덕성 문제에 휘말려 도중하차한 데 대하여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검증을 제대로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취임 전이거나 취임 초라서 검증 체계가 자리를 잡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장관 혹은 차관을 할 만한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나 지도자들 가운데 엄격한 도덕성의 관문을 통과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현실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역대 정부들도 대체로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를 위태롭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좀 더 관대하게 보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처리 과정이나 인사 잡음은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늘 있어 온 일이라는 점에서 임기 초기의 시행착오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그 자체이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박근혜 정부가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갑제(趙甲濟) 전 ≪월간조선≫ 발행인이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책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기(傳記)이다. 이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다. “인간이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 그러한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 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이 몇 가지 흠결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온 것은 큰 지도자이기 때문이라는 암시이다.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강한 신념과 애국심도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비전과 통찰력과 대인의 풍모까지 이어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그 잠재력 여부는 앞으로 박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답게 대국(大局)의 지도자여야 한다는 점을 박근혜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 주장대로 하면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이 의미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설령 야당의 주장대로 하더라도 미래창조과학부의 본질적인 기능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미래 창조라는 기능이 일개 정부 부처의 전담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모든 정부 부처와 공직자들이 미래 창조를 염두에 두고 국정 운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정을 표류시키면서까지 원안에 집착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역시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 있다. 특히 임기 초반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도 그런 실수에 대해 어느 정도 너그러운 편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인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교체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의 인기가 올라갔다.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로부터는 어떤 활력조차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바뀌면 뭔지 모를 기대감에 부풀기 마련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요직에 앉거나 새 정부의 정책이 나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로 새 정부의 동정(動靜)이 화제가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게서는 대통령의 너무나 조용하고 진중한 처신 때문인지 전혀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박근혜 대통령이 큰 지도자라면 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국민들이 실의에 젖어 있는 상황이다. 허황된 말을 남용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힘을 합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감동적으로 던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눈길을 주게 된다. 공직자들 또한 배전의 노력을 하게 된다. 그저 기능주의에 빠져 일상을 소화하다 보면 5년은 금방 지나가고, 박근혜 정부는 그저 그런 정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비판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무관심을 두려워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이 정부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경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고 남다른 카리스마와 품격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주목을 적게 받는 데는 박 대통령 특유의 원칙주의 면모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너무 가벼운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무거운 것 역시 문제이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는 몇 년 전에 “아베(安培晋三) 총리는 변화구를 던질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이 언제나 한결 같으면 질려 버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경구(警句)가 아닌가 싶다.

   인재를 폭넓게 기용하는 것 역시 큰 지도자에게서 나온다. 더욱이 국민 대통합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의 약속이다. 낙마가 잦은 것도 측근 위주 인사의 부작용이다. 국정 철학의 공유가 반드시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인사 철학부터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미국의 철학자 앨버트 후버드(Elbert Hubbard)는 “능력보다 훨씬 진귀하고, 훨씬 뛰어나며, 훨씬 드문 것이 있다. 바로 능력을 알아보는 능력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이 아닐까?

   이제 시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발 끈을 다시 조여매고 분발한다면 앞서 있었던 자잘한(?) 일들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작은 실수들을 전환의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비슷한 일들이 재연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은 유연하고 또 유연해야 한다. ‘원칙주의자’는 ‘양날의 칼’이다. 어쩌면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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