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6 천주교 탄압에 의해 발생한 프랑스 군대의 침략 ‘병인양요’ [키워드 한국사]
EP.116 천주교 탄압에 의해 발생한 프랑스 군대의 침략 ‘병인양요’ [키워드 한국사]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7.02.0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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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 디자인 이정선 pro]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서구의 문물과 종교인 천주교의 평등주의가 왕권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때문에 1866년 초부터 천주교를 신봉하는 것을 금하는 령을 내리고 탄압을 시작했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은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과 한국인 천주교도 8천여 명의 학살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에 겨우 조선을 탈출한 펠릭스 클레르 리델(Félix Clair Ridel) 신부는 그해 5월 중국 텐진에 주둔하고 있던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피에르 로즈(Pierre Roze) 제독에게 한국의 천주교도 학살 사실을 전했다.

 

이에 프랑스는 청국정부에 한반도에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간섭하지 말라고 통고하였고 청국 총리아문사무의 공한을 통해 프랑스의 움직임을 눈치 챈 대원군은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과 변경 수비를 동시에 강화했다.

조선은 당시 흥선대원군이 집권 초기에 행했던 개혁정치를 통해 강력한 국방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9월 18일, 프랑스 군함 3척은 리델 신부와 한국인 신도 3명의 안내로 서울 근교 서강에까지 이르렀고 프랑스의 군함을 본 조정은 경인연안을 엄중 경비하도록 하였다.

프랑스 함대는 강류 ·연변만 측량하고 9월 25일 청나라로 다시 돌아가 10월 순양전함 게리에르를 포함해 모두 함대 7척과 600명의 해병대를 이끌고 다시 한반도로 왔다. 프랑스 군대는 10월 14일 이 중 4척의 함정과 해병대로 강화도의 갑곶진 진해문 부근의 고지를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군은 한강수로 봉쇄를 선언하고 16일 전군이 강화성을 공격하여 점령, 무기와 서적, 양식 등을 약탈하게 되었다.

이에 조선 조정은 각 요지에 장수를 보내 수비하도록 하는 한편 19일 로즈 제독에게 조선에서의 선교사 처단의 합법성과 프랑스함대의 불법 침범을 들어 퇴거할 것을 통고하는 격문을 보냈다.

이에 로즈는 선교사들을 학살한 것을 비난하여 책임자를 엄벌하고 전권대신을 파견하여 자기와 조약의 초안을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10월 26일 약 120명의 프랑스군이 문수산성을 정찰하는 도중에 한성근의 소부대에게 기습을 당해 처음으로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받았다.

이에 프랑스 군은 민가와 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11월 7일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프랑스 해병 160명이 정족산성을 공격하려는 도중에 잠복하고 있던 500여명의 조선군 사수들에게 일제히 기습 사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간신히 갑곶으로 패주하게 되면서 로즈 제독은 철수를 결정하였다.

프랑스 군은 11월 11일 강화성에서 철수하면서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약탈한 재물과 대량의 서적, 무기, 보물 등을 가지고 중국으로 떠났다. 병인년에 양인이 침략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을 병인양요(丙寅洋擾)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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