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단순한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여도 만들 수 있는 가구인 이케아는 전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며 ‘가구 공룡’을 넘어서 ‘가구 왕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시작에는 이케아 CEO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가 있다. 스웨덴의 독일 이민 3세대로 어려서부터 장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가 17세에 시작한 작은 잡화점이 지금의 이케아의 시작이다.

‘도전과 위기를 감당하는 능력과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그는 이케아의 정신으로 ‘도전과 위기를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라고 칭했다. 이케아는 지금까지 두 번의 역풍을 맞았다. 첫 번째 역풍은 1950년대 초 동종 업계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 품질이 약화된 것이다. 신뢰도의 큰 타격을 입은 캄프라드는 사무용품과 필기구 판매를 포기하고 ‘가구’에만 집중 했다.

▲ (출처/잉바드 캄프리지 트위터)

그리고 상설 가구 전시장을 오픈하여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제품을 확인할 수 있게 하면서 신뢰도를 회복하려 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케아 쇼룸의 아이디어는 이 가구 전시장에서 시작한 것이다.

저렴한 가격의 원천? 철저한 시장 조사와 지독한 구두쇠 전략

이케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저렴한 가격’이다. 해당 국가에 진출하기 전 철저한 시장조사를 하고 환율, 관세, 경제사정과 물가 등을 고려해 가능한 한 낮은 가격 책정한다. 또한 나라의 생활습관, 문화, 소비자 심리를 고려하여 최적의 전략을 세워 진출해 빠른 시간 안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잉바르 캄프라드 짠돌이 정책도 한 몫 하고 있다. 이케아 직원들은 해외출장 시에도 예외 없이 이코노미석과 저렴한 호텔을 이용해야 한다. 캄프라드는 자신이 쓴 책 ‘어느 가구상의 고백’을 통해 “이케아에서 낭비는 죄악”이라고 말하며 직원들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 (출처/위키미디어)

"이케아의 임원진들은 회사문 앞에 지정 주차장을 가질 수 없다. 구내식당에서도 지정석은 없다. 이케아의 고위 직원들은 팀의 일부일 뿐이다.“

캄프라드는 계급제나 위계질서 같은 수직적 문화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는다. 그는 직원들을 자신의 동료(co-worker)라고 부르고 직원들도 그를 ‘잉바르’라고 칭한다. 그만큼 이케아는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고 캄프라드 역시 ‘동료애’를 중요시한다.

▲ (출처/위키미디어)

1994년, 그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을 때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그때 캄프라드는 오너가 아닌 여러 직원들 중 한 명으로서 이케아 내 유대인 동료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케아는 ‘소풍'이다!

'배고프면 아무도 가구를 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업계 최초로 매장에서 음식을 판매했다. 이케아에서 파는 1달러 정도의 핫도그는 코스트코의 피자만큼이나 유명인사다. 또한, 고객이 이케아를 즐거운 장소로 생각하도록 체험형 매장도 함께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 (출처/플리커)

전 세계 매장 345개, 직원 15만1천 명 연 매출 44조 5천억 원을 자랑하는 세계적 기업인 CEO. 가족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경영권을 그는 이케아의 발전을 위해 가족이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승계했다. 고문으로 물러난 잉바르 캄프라드는 지금도 이케아의 정신으로 남아 이케아의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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