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피플] 짧은 순간 맹렬히 빛난 무술가이자 영화배우 ‘이소룡’
[시선★피플] 짧은 순간 맹렬히 빛난 무술가이자 영화배우 ‘이소룡’
  • 보도본부 | 이호 기자
  • 승인 2016.11.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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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 살아서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액션 스타였다가 죽어서는 전설이 된 그 이름 ‘이소룡(Burce Lee)’. 그가 살아있었다면 오는 11월 27일 그의 71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짧지만 불같은 삶을 살다 간 그의 생애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 영화 맹룡과강

이소룡의 본명은 이진번(李振藩)으로 1940년 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때 부모와 홍콩으로 돌아가 자랐다. 그는 영춘권(詠春拳)의 고수인 엽문에게 권법을 사사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소룡으로 인해 후일 엽문이 재조명이 되기도 했다.

▲ 엽문과 함께

중고등 시절 이소룡은 소위 말하는 불량청소년으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차차차 댄스콘테스트에서도 1등을 하는 등 춤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여자친구와 댄스장에서 춤을 추다 미군병사들과 싸움이 붙어 때려 눞이는 사고를 친다. 이에 경찰이 찾아와 감옥에 처 넣는다는 말을 하자 이소룡의 신변을 걱정한 부모는 이소룡을 1959년 4월 샌프란시스코의 자신의 누나에게 보내버린다.

미국으로 간 이소룡은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무술을 가르쳤다. 그는 인근에 있는 가필드 고등학교에 쿵푸를 시범하러 갔는데 이 학교의 여고생들 중 린다 C. 에머리(Linda C. Emery, 1945~)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이소룡의 제자가 되었고, 교사가 되려고 이소룡과 같이 워싱턴 대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64년 8월 17일에 결혼하게 된다.

이소룡은 샌프란시스코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격투기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복싱, 유도, 펜싱, 태권도, 가라테 등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인 절권도를 정립시켰다. 그는 무술의 단련 외에도 항상 영화배우를 꿈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한 바 있었고 그로 인해 대학교도 연극학과를 선택했다.

▲ tv시리즈 그린 호넷

하지만 동양인인 그가 미국에서 영화에 데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1964년 영화배우가 되려는 마음을 접고 무술에 전념하기로 하여 자신의 무술을 홍보하기 위해 롱 비치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시범자로 참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 도지어(William McElroy Dozier)에게 그 무술 실력을 높게 평가 받아 TV 시리즈인 ‘그린 호넷(The Green Hornet/1966~1967)’의 케이토(Kato)역을 따내어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69년 이소룡은 ‘말로우(Marlowe)’를 통해 미국 영화에 데뷔하게 되었고 이후 간간이 다른 영화에서 무술 감독 등의 역할로 얼굴을 비추었지만 큰 이슈도 되지 못했고 동양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조연으로만 출연할 수 있는 현실에 큰 실망을 하게 된다.

▲ 당산대형 포스터

그는 결국 홍콩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의외로 그린 호넷이 홍콩에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어서 그의 이름도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홍콩의 영화제작사인 골든하베스트와 영화 2편을 계약 하고 당산대형(唐山大兄; The Big Boss/1971)을 촬영한다. 당산대형은 당시 맨손 격투 영화의 붐과 더불어 이소룡의 뛰어난 무술실력으로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고 그는 이 기세를 몰아 정무문(精武門/1972)으로 연타석 흥행 홈런을 친다.

골든하베스트와의 계약이 끝난 이소룡은 협화전영공사를 창립하여 각본과 감독, 주연과 무술지도, 제작까지 스스로 한 작품 ‘맹룡과강(1972)’으로 또 다시 흥행 신기록을 세워 그의 능력을 뽐냈다.

▲ 영화 용쟁호투

1973년 이소룡은 골든 하베스트사와 워너 브러더스사의 공동 제작 작품인 ‘용쟁호투’의 주연을 맡게 되었고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위상은 미국과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곧바로 ‘사망유희(1978)’의 촬영에 돌입하였는데, ‘용쟁호투’의 개봉을 얼마 안 남기고 1970년 7월 20일 애인으로 소문이 났던 대만 여배우 베티 팅 페이(Betty Ting Pei)의 집에서 사망한다.

 

누구보다 강한 모습을 보였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은 공식적으로는 약물 부작용이었지만 충격이 큰 탓에 많은 소문을 낳는 등 죽음까지도 슈퍼스타다웠다. 그리고 그는 절권도라는 군더더기 없는 권법의 창시자로 현재까지도 그의 강함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배우이자 최강의 무술가로 칭송받는 이소룡.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설로 만들어 버렸다. 짧은 시간 찬란하게 빛난 이소룡, 오늘 그의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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