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광윤 칼럼니스트]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되었다. 열흘 전에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은 있었으나, 열흘이 지나고도 정부조직법조차 통과되지 않았으니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한창 의욕에 차 있어야 할 새 정부가 초장부터 야당과의 샅바 싸움에 휘둘리고 있어 앞날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점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목이 잡힌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드문 현상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이 비록 근소한 차이로 야당 후보를 눌러 이겼다고 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을 만큼 당내 사정이 그렇게 여의치 못하다. 대정부 투쟁을 할 만큼의 동력이 센 편이 아닌 것이다. 박 대통령의 조용한 처신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대다수 언론들도 밀월기간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편이다. 다만 정부조직법의 통과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야당으로서는 정부와 힘겨루기를 할 만한 사안인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새 정부의 색깔이 담긴 정부조직 개편안이기 때문에 원칙을 고수하려는 태도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는 박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걸작이나 다름없고, 미래창조과학부의 성공 여부에 이 정부의 성패가 걸려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야당의 시비가 도를 넘은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새 정부를 길들이기에 딱 좋은 목표물인 것이다. 야당의 처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신경전이 오래 가면 결국은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통치자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지혜를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요즘 시대에서는 용맹보다 지혜가 더 소중한 덕목이다. 지혜는 지적인 통찰력과 함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유연성은 바꾸어 말한다면 정치력이라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에게 응당 있어야 할 정치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역대 대통령들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었다. 정치력의 빈곤으로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가장 필요한 리더십의 조건은 바로 정치력이다. 다행스럽게도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두 차례나 지내는 등 정치 현장에서 오래 몸담았기 때문에 정치력을 기대할 법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먼저 연상되는 것은 정치력보다는 원칙주의의 이미지이다. 지도자가 원리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야당을 포함한 반대자들을 포용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원리원칙만으로 국정을 이끌어가기가 어렵다. 아무리 정부와 대통령이 숭고한 가치와 정책을 펼치려고 하더라도 야당은 야당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정부와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대통령은 야당과 일정한 타협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것이 정치의 본령이고, 대통령이 맞닥뜨려야 할 숙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좀 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미래창조과학부가 새 정부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발상부터 재고해야 한다. 분명히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은 괜찮은 아이디어이다. 역대 정부들에도 이 비슷한 기능을 갖춘 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 조직이었다. 비유컨대 박정희 정부 때의 경제기획원이 산업화의 견인차였다면,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는 21세기 지식정보 시대 혹은 융합 시대의 견인차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주장대로 한다고 해도 미래창조과학부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나무에 연연하지 말고 숲을 보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정부 부처를 만든다고 해서 저절로 미래창조과학 기능이 갑자기 신장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가 그 기능을 직접 실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업이나 학계 등 민간의 미래창조과학 역량을 드높이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인프라를 깔며,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일이 정부 역할의 전부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성패는 그 권한의 크기보다는 그 부처 공무원들의 문제의식이나 역량에 달려있다. 우리나라의 공직사회 풍토나 창의적인 인재들에 대한 홀대 분위기로 볼 때 과연 미래창조과학부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박근혜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 관심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작년 12월 19일 이후 두 달여 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리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몇 가지 시행착오들에 대해 정권의 성공을 위한 성찰의 계기로 삼지 못한다면 의외로(?) 쉽지 않은 길을 갈 수가 있다. 첫째, 기능주의로부터의 탈피이다. 박 대통령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으면 정부가 잘 돌아가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참모들에게 필요한 자질은 숲을 보는 안목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얼마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느냐이다. 국무회의가 브레인스토밍의 마당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둘째, 폭넓은 인사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코드 인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박근혜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동안의 친분을 맺은 인사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전혀 생소한 사람들도 정권 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탕평책을 펼치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지만, 대통합을 지향하는 이상 보다 폭넓은 인사가 필수불가결하다. 폭넓은 인사에는 멀리서 인재를 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지만, 특정 직업과 계층 출신에 너무 얽매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다. 현상유지형 기득권 인사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로 과연 미래창조는 될지, 국민통합은 이루어질지 회의적이다.

   셋째, 활력의 고취이다. 어느 정부든 임기 초기에는 활력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새 대통령과 참모들의 의욕 때문일 수도 있고, 막연하지만 새 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활력이 넘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기소침해 있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의식적으로라도 희망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작년 대통령 선거 이후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로부터는 어떤 활력을 느낄 수가 없다. 새 정부의 지나치게 조용한 행보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오버 액션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너무나 조용하다 못해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지경이다. 새 정부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식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넷째, 소통이다. 역대 정부들의 실패는 소통의 실패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통의 지도자인가? 여기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들은 드문 편이다. 그만큼 소통과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참다운 소통은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을 남의 생각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원칙주의자 면모가 참다운 소통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연성이 부족한 나머지 내 생각을 관철하려 들면 소통은 깨질 수밖에 없다. 야당의 책임은 별도로 따지더라도 작금의 어려움은 새 정부의 소통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 원수이다. 그래서 통합과 공감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정부와 공직자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에 먼저 주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낮은 자세로 민심의 파도에 몸을 던져야 한다. 거기서 몸소 부딪히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간극을 좁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침묵과 몸 사리기는 금물이다. 필자가 박 대통령에게 정치력의 발휘를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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