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축구 그라운드에서 염색한 긴 뒷머리를 질끈 묶고 골문을 지키던 일명 ‘꽁지머리’라 불리던 선수. 그는 25년간 ‘K리그 통산 최다인 706경기 출장’하며, ‘153경기 최다 무교체’, ‘228경기 최다 무실점’, ‘45세 최고령 출전’ 등 독보적인 기록을 남기고 지난 달 18일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에 여전히 그의 활약을 기억하는 팬들의 아쉬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대표 골키퍼 김병지이다.

▲ 꽁지머리 김병지, 그가 지키는 골문은 든든했다. [사진/울산 현대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 김병지는 대한민국 대표 골키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병지의 ‘골’을 기억한다. “골키퍼가 무슨 ‘골’?”이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많지만 김병지는 순발력과 재치를 겸비한 특색 있는 골키퍼로, 골문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페널티 박스 밖에서도 공을 몰고 빠른 공격이 필요한 순간에는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직접 공격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김병지는 1998년 K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 2차전에서 포항을 상대로 ‘헤딩골’을 터뜨리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김병지의 이러한 플레이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유는 2001년 파라과이와의 칼스버그컵 3위 결정전에서 골문에서 나와 드리블을 하다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고 일각에서는 이러한 스릴?있는 플레이가 월드컵 경기 출전을 가로막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 것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번개처럼 빠른 김병지의 스피드와 재치 있는 플레이는 많은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며 흥분하게 만들었다.

▲ [사진/울산 현대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과감한 플레이로 번개 또는 날쌘 돌이로 불리던 김병지. 그러나 그는 축구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강직한 면모가 있다. 김병지는 유년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김병지는 고교 졸업 후 자신을 찾는 프로는 물론 대학팀도 찾지 못했다. 더구나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지체할 수 없이 취업의 길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김병지는 축구를 결코 놓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직장인 팀에 소속해 공을 차며 축구를 늘 곁에 두었다.

▲ [사진/울산 현대 공식 홈페이지]

그러던 김병지는 만 20세가 되던 1989년 군대를 가야만했다. 주변에서는 더 이상 김병지가 직장인 축구팀도 관두어야 된다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지만 김병지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상무’ 테스트에 도전을 했다. 이를 계획이라도 한 듯 직장 내에서 꾸준히 축구 활동을 하며 감을 키어 온 김병지는 결국 일반인이 상무 입대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를 만들고 말았다.

▲ [사진/울산 현대 공식 홈페이지]

그렇게 성실한 자세로 상무 제대 후, 김병지는 울산 현대에 입단해 올해 9월까지 어엿한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강직하게 축구의 꿈을 간직한 채 빠른 순발력과 페기 넘치는 플레이를 무기로 김병지는 1998년과 2002년 월드컵 멤버, K리그 베스트 11 4회 수상, K리그 우승 등 한국의 축구 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김병지는 지난 11일 오후 창덕궁에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개최해 화제가 되었다. K리그 홍보대사이기도 한 김병지가 문화재 지킴이로 변신한 것이다.

▲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 김병지, 그의 후반전이 기대된다. [사진/K리그 공식 홈페이지]

이렇듯 비록 김병지는 선수생활을 마치지만, 축구 그리고 삶에 대한 강직한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김병지의 은퇴가 아쉽지만 축구선수로의 전반전에 이은 새로운 후반전에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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