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한지윤 에디터] 지금은 ‘비정상회담’, ‘이웃집찰스’ 같은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에서도 외국인 방송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불과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한국 방송에서 외국인을 접하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분야를 구축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현재처럼 외국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데 기초가 된 ‘원조’ 외국인 방송인은 누가 있을까?

▲ 사진출처/황금어장 캡처

한 인스턴트 식품 광고에서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던 미국인 ‘로버트 할리’가 바로 원조 외국인 방송인 중 하나다. 그는 1990년대 중 후반에 방송가에 혜성처럼 등장해 엉뚱하고 진솔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한없이 드러내 큰 호감도를 끌어냈다.

지금은 귀화하여 ‘하일’이라는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어떻게 한국을 접하고 정착하게 되었을까?

로버트 할리는 미국의 시골 출신으로 1958년 미국 유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다. 그는 1979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교활동을 위해 부산을 방문했다.

그는 선교활동을 할 때에는 한국에 특별한 감흥이 없었지만 미국에 돌아오자 한국병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 할리는 부산의 자갈치 시장이 떠올랐고 한국 친구들도 무척 그리워졌다. 결국 그는 1987년에 미국에서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 한국으로 들어와 변호사로 일하고 가정도 꾸리게 되었다.

▲ 사진출처/비정상회담 영상 캡처

그러다가 그는 1995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서 할리를 접했지만 사실 할리는 방송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부산의 ‘스타’였다. 그는 부산방송의 '굿모닝 미스터 할리', 부산 통신망인 아이즈(EYES)에서 '할리와 함께'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1995년에 중앙 방송으로 진출했다.

이후 할리는 영어 방송, 토크쇼, 음악 프로그램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의 감초로 활약했다. 어딘가 어눌한 경상도 사투리와 탁월한 예능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방송에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운 모습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 사진출처/롤러코스터 캡처

2012년에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자신도 모르게 미국친구를 가리키며 ‘양놈’이라 하거나 2002년에 열렸던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를 상대로 할리우드 액션을 한 미국 선수 오노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등의 모습은 '과연 뼛속까지 한국인구나' 하며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한편 로버트 할리는 한국에서 사회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1999년 3월에 한국에서는 세 번째로 광주에 외국인 학교를 설립하여 주목을 받았다. 할리는 한 인터뷰에서 “아들을 외국인학교에 보내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고, 한국인학교에 보내자니 강압적인 한국식 교육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맹모(孟母)보다 더한 맹부(孟夫)의 면모를 보여줬다.

▲ 사진출처/닥터의 승부 캡처

초반에 학교는 부산의 한 청소년 근로복지회관을 빌려서 운영했기 때문에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부산으로 이주를 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학교가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투자까지 받게 된다. 결국 전라도 광주 지자체로부터 외국인 학교를 설립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할리는 제2의 고향인 부산을 떠나 광주에 자리 잡게 됐다.

▲ 사진출처/밥상의 신 캡처

추석이 되면 늘 추석특집 프로그램의 단골으로 얼굴을 내보였던 할리. 지난 1997년에는 ‘하일(河一)’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한 그는 예전처럼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