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현대 사회 속에서 가요에 묻혀 가는 우리의 전통 음악 ‘판소리’, 그 안에는 우리 내 삶의 희, 로, 애, 락이 다 담겨있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판소리로 들려주는 것이 좋았다던 소리꾼 최용석 대표는 자신이 느끼는 판소리의 매력을 대중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그의 ‘바닥소리’를 들어 보도록 하자.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최용석 대표의 특별한 인연 스토리는 보너스!

PART 1. 판소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다.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판소리’하는 최용석입니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대표로 현재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판소리 뮤지컬 같은 창작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기도 한데요, 판소리는 성우향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지금 강단에 서기도 하지만 대학원에서 못 다한 배움의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

판소리를 직접 하시면서 제작까지 하시는군요.
- 아무래도 판소리를 하면서 제작까지 하고 있다 보니까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소리를 아니까 더 적합한 극을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대표로 계신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 소개 부탁드립니다.
- 우선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라는 명칭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판소리 공장은 “판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닥소리의 바닥은 ‘삶의 자리’를 뜻해요. 그래서 “삶의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노래하고, 또 삶의 자리를 찾아가는 노래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합해보면 ‘삶의 자리를 노래하는 소리, 판소리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설립과정이 궁금한데요.
- 2002년도에 처음 7~8명들의 소리꾼이 모여 만들었고, 그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는 ‘나눔의집’을 찾아다니면서 판소리 공연을 하며 함께 판소리를 즐기는 일들을 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판소리에 사회성을 좀 버무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창작판소리 중심으로 활동을 했고요. 점차 그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판소리가 ‘옛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고 보는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가 될 것인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나 이슈 등 세상 돌아가는 지금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설립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인연이 있다면요?
- 바닥소리 창단멤버 중에 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정래씨는 바닥소리의 ‘고수’였습니다. 이전부터 대학교 선후배로 알고지내다가 판소리에 열정을 서로 확인하고 창작판소리를 해보자 하여 바닥소리를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닥소리’에서 만들어진 창작 판소리를 들려드리고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위문공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조정래씨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구상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세상의 이야기를 담는다...멋진데요! 대표적인 작품이 있나요?
- 대표적으로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담은 ‘스마트 폭탄가’를 제작해 전쟁 반대 시위장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계층간의 갈등 그리고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담은 ‘잔혹판소리 햇님 달님’ 등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담아 공연했습니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5.18사건을 다룬 ‘방탄 철가방’에 애정이 갑니다.

그렇게 창작 판소리에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 대중의 공감을 얻어가던 중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판소리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판소리를 더 많은 대중에게 들려드리기 위함이었죠. 그 때 탄생한 작품이 ‘닭들의 꿈, 날다’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과 음악상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기도 해요. 제2회 창작국악극대상에서는 5.18사건을 소재로 만든 ‘방탄 철가방’이라는 작품이 또 수상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 역시 제가 만든 작품이죠. 하하하

어떠한 계기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 제가 어릴 적 아버지께서 판소리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참 많은 판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듣다보니 판소리가 좋아지지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판소리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 때는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판소리 북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2때부터 전문적으로 아버지께서 소개해주신 국악 선생님께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판소리 신동 이러한 아이들에 비해서는 조금 늦은 거죠. 하하하

▲ [출처/서울문화재단]

판소리 뮤지컬은 어떠한 개념인가요?
- 전통의 판소리는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하는 음악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도 참 드믄 그런 형식이죠. 그러한 판소리를 확장한 개념이 ‘판소리 뮤지컬’입니다. 혼자 하던 역할을 배역을 정해 나누고 뮤지컬과 연극의 연출기법을 가미해서 만들어지게 되죠.

판소리 뮤지컬은 기존에 있던 개념인가요?
- 아니요.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판소리만 존재하다가 창극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저희 ‘바닥소리’를 포함한 여러 민간 극단에서 서양의 연극과 뮤지컬 형식을 접목해 ‘판소리 뮤지컬’를 형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작가의 의도에 의해서 뮤지컬이나 연극적인 요소를 더 많이 가미하기도 하고 조금 줄이기도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죠.

 

판소리 뮤지컬,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류’를 위한 도전도 하시나요?
- 이미 국제무대에서 판소리 극을 공연하는 판소리꾼들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자람씨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죠. 꾀 반응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국내 많은 판소리 관계자들이 해외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가적인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고요.

하지만 저 그리고 ‘바닥소리’는 아직 국제무대를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내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를 대한민국에 더욱 뿌리내리게 할 수 있나라는 고민을 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국내에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판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내 무대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중들에게 우선 판소리를 더욱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바닥소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판소리를 옛 것이라고 여기는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최용석 대표가 팔을 걷었다. 판소리에 현대 극의 요소를 가미해 이른바 ‘판소리 뮤지컬’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 그야말로 판소리의 새로운 바람이 아닐 수 없다. 신바람 나는 그의 2막을 다음시간에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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