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선임 에디터 /디자인 이연선pro]

▶마가렛 대처 (Margaret Hilda Thatcher)

▶출생-사망 / 1925. 10. 31. ~ 2013. 4. 8.

▶국적 / 영국

▶활동분야 / 정치

19세기 최대의 제국을 자랑했던 영국은 세계 대전 이후 그 기세가 꺾여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큰 정부, 복지사회였던 영국은 일하지 않고 세금은 많고 일자리 없는 ‘영국병’을 낳으며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는 영국을 친(親)기업,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탈바꿈한 여성 정치가가 있다. 바로 ‘마가렛 대처’다. 지금도 활약상이 회자되고 그녀,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 식료품 집 딸 대처,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관심을 두다

그녀가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 알프레드 로버츠 때문이다. 로버츠는 식료품점을 경영하다 정치에 입문해 마가렛이 대학에 진학할 즈음에는 그랜덤 시장에 취임했다. 열 살의 어린 마거릿은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위해 벽보를 붙이고 선전물을 돌렸고, 아버지와 정치 문제에 토론하고 다른 후보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브리핑하는 등 자연스럽게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 마가렛 대처, 정치에 입문하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변호사가 된 마가렛이었지만 보수당 간부들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열성으로 보수당의 선거운동을 도운 결과, 1958년 런던의 핀츨리 선거구에 입후보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59년에 국회의사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대처는 유머감각도 없었고, 말을 할 때 거창하고 화려한 표현을 쓰지 않았으며, 필요한 말만 했다. 이러한 면이 두각을 나타내어 그녀는 “필요한 말만 하는” 정치인이라는 별칭이 생기게 됐다. 또한 과학도답게 연설에서 반드시 통계수치와 계량적 지표 등을 내세우며 듣는 이의 신뢰감을 높인 점, 무엇보다 여성이면서도 당차고, 열정적이고, 강철 같은 의지를 내보인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차관 제의를 받았으며 1965년에 주택장관과 연금장관, 1966년에 재무장관, 1967년에 에너지장관, 1968년에 교육장관, 교통장관, 1970년에 다시 교육장관을 지내는 등 화려한 공직 이력을 쌓게 되었다.

-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다

공직 이력을 쌓은 그녀는 히스 내각이 1974년에 무너지면서 정권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히스의 당권에 도전하고 1975년에 보수당 당수가 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녀는 야당 당수로서 노동당 정부를 매섭게 몰아붙였고, 마침내 1979년에는 경제난과 총파업이 엎친 데 덮치며 “불만의 겨울” 속에 노동당이 무릎을 꿇었다. 마거릿 대처는 보수당 최초의 여성 당수에 이어 영국 최초의 여성 수상이 되었다. 서구 국가들 중에는 최초의 민선 여성 최고통치자이기도 했다.

-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 그녀를 ‘철의 여인’으로 만들다

취임 첫해 대처는 외국환 관리 철폐와 국영사업 민영화에 착수하는 한편, 노조 활동을 규제하는 입법에 나섰다. 이밖에 정부의 주택구입 보조비를 폐지하며, 고등교육 지원금을 폐지하는 등 교육 투자 예산 대폭 감축 등을 추진했다. 복지를 중요시한 영국의 사회 분위기상 대처의 이와 같은 파격적인 행보는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처는 국내적으로도 항상 비타협적이고 치안 유지를 위해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워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별칭답게 대처는 주변의 반발에도 굴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펼쳤으며 그 결과 1980년대 초에는 성장률과 물가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나 실업률과 무주택자 비율은 늘어나 절반의 성공만 이루게 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늘 강경한 모습으로 모든 일을 대처했던 것은 아니다. 이면에서는 협상과 타협에 힘쓰기도 했다. 탄광노조와 정면 대결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건파 노조와 제휴했던 것처럼, 현대 영국의 고질병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의 갈등에서도 겉으로의 강경과 속으로의 유화로 대응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대처는 1979년에 처음 집권한 후 1983년, 1987년의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총선 3연패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성으로서 최초의 수상이 된 마거릿 대처. 그녀의 극단적인 정책 때문에 후세의 평가도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영국 경제를 병들게 한 고질병인 영국병을 과감한 친(親) 시장정책으로 바꾼 것에는 의미가 깊다. 앞으로도 마거릿 대처를 잇는 여성들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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