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말은 결혼식 주례사의 단골 멘트이다. 부부간의 영원한 사랑과 신뢰를 당부하는 축복의 주례사이기도 하지만, 사랑과 신뢰가 깨어진 부부에게 이 말은 족쇄와도 같은 ‘사회적 통념’일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 속에 “자식 때문에”, “사회적인 눈치 때문에” 등의 이유로 참고 참아가며 ‘파뿌리’언약을 지켜 나가왔다. 하지만 요즘의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삶의 가치와 기준을 ‘나’에게 맞춰 살아가는 요즘, ‘파뿌리’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잊힌 자아를 찾기 위해 황혼이혼까지 감행하는 부부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1990년 2300여 건이었던 황혼이혼이 2014년 들어 3만 3천여 건까지 급증하기도 했다.

▲ [사진/픽사베이]

그리고 최근 이 ‘황혼이혼’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 등장해 화제다. ‘졸혼’이 바로 그것이다. ‘졸혼’이란 '졸업'과 '결혼'이 합쳐진 신조어로 아이를 다 키우거나 은퇴한 황혼기 부부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꿈을 위해 따로 사는 경우를 말한다.

‘졸혼’의 특징은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일정기간 떨어져 자유롭게 살아가며 시간을 정해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의 삶을 산다는 점이다. 이렇듯 ‘졸혼’은 부부 사이에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혼’과는 성격이 다르고, 정기적으로 부부가 만난다는 점에서 ‘별거’와 구분된다.

‘졸혼’의 유래는 일본의 한 책에서 시작됐다. 2004년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출발했고, 2013년 일본의 코미디언 시미즈 아키라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졸혼’이란 표현을 써서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일본에서는 유명인이 잇따라 ‘졸혼’ 선언을 하는 등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졸혼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2014년 일본에서 한 건축업체가 30~65세사이의 기혼 여성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결과 56.8%가 ‘졸혼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또 시기는 ‘은퇴 후’가 가장 적정하다고 꼽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남편의 수발을 들기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사고가 뿌리내리고 있다"며 “이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능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졸혼’은 이제 막 일본에 퍼지기 시작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부부관계에 대한 개념이다. 하지만 앞서 전문가의 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가족을 위해 평생 희생하기 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부부’의 관념이 바뀌고 있으며, 실제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또한 여성의 경제적 자립 능력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듯 부부가 좋은 감정이 유지된 채, 서로의 행복을 찾기 위해 통념적 결혼을 내려놓는 ‘졸혼’. 부부간의 좋지 않은 감정으로 결정하게 되는 이혼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졸혼’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되어버린 지금, 분명 부부관계에 필요한 개념이지만, 그에 앞서 이러한 개념들이 자칫 결혼의 소중한 끈을 쉽게 놓게 하지는 않을까하는 많은 고심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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