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정유현 인턴기자] 다가오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휴가계획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꿀’같은 휴일인 ‘어린이날’. 과연 이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 출처/위키피디아

1923년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은 방정환으로 호는 소파이다. 소파 방정환은 1899년 10월 7일(음력) 서울에서 방경수(方慶洙)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소파 방정환이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남선의 영향이 큰 듯하다. 그는 자라면서 최남선이 발간하던 ‘소년’·‘붉은 저고리’·‘아이들 보이’·‘새별’ 등을 탐독했는데, 그 후에 나온 ‘청춘’의 현상작문에 당선되면서 아동문학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방정환은 돈을 벌기 위해 1915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 취직하기도 했는데 1917년 4월 천도교 3세 교주이자 3·1운동 33인의 대표인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와 결혼하여 천도교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한독립운동에 나서게 된다.

소파 방정환은 1918년 유광렬(柳光烈)과 함께 ‘신청년’을 편집 발간했으며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신문’을 비밀리에 발행했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20년 방정환은 일본의 도요대학 문화학과에 들어가 아동문학 아동심리학을 공부했는데, 일본으로 유학 간 것을 계기로 그는 어린이와 관련해 다양한 일들을 벌이게 된다.

▲ 출처/어린이 표지

방정환은 동경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곧 ‘색동회’이다. 그리고 이 색동회 동인들이 중심이 돼서 1923년에 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했다. 1925년 서울의 인구수는 30만명에 불과했는데 ‘어린이’는 인구의 3분의 1인 10만부를 판매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출처/잡지 어린이

‘어린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잡지의 특별한 구성에 있었다. 먼저, 잡지 ‘어린이’는 오늘 날처럼 윷놀이 판, 금강산 게임말판과 같은 특별 부록을 증정했다. 이는 잡지에 관심을 끌게 함은 물론, 어린이들이 조선의 지리를 공부해 민족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흥미와 교육이 결합된 특별구성이었다.

또 독자초청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방정환은 여기에 나가 구연동화로 어린이들의 배꼽을 빠지게 하는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그가 잡지 ‘어린이’를 창간한 이유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양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그는 혹독한 일제의 검열을 받아야했고, 여러 번 총독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지가 있었기에 5월 1일인 ‘어린이날’이 탄생했으며, 지금까지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하고, 어린이에게는 앞날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날’인 ‘어린이날’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쓰자고 외쳤던 방정환은 1924년 ‘전국소년지도자대회’를 열고 1925년에는 ‘소년운동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일제의 간섭이 심해지자 방정환은 강연회, 동화 구연대회, 라디오 방송 등의 다른 방향으로 계속 독립운동과 어린이운동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방정환은 이후 1929년에 중학생 잡지인 ‘학생’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신장병이 악화되어 결국 1931년 7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 출처/도서출판 사계절

그는 방정환이라는 이름보다는 ‘깔깔박사’, ‘몽중인’ 등 다양한 필명으로 잡지에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책들 중 여동생을 납치한 일본인의 음모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통쾌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작품인 ‘칠칠단의 비밀’과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인 ‘만년샤쓰’는 아직까지도 인기가 높다.

▲ 출처/길벗 어린이

그는 죽기 전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마차를 가지고 검정 옷 입은 마부가 데리러 왔으니 나는 가봐야겠다”고 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일평생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동화 같은 삶을 꿈꾼 그의 삶이 단적으로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그가 우리민족,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바친 열정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생히 전달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없었다면 ‘어린이날’이 탄생하지도, 어린이의 인권이 이 만큼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곧 돌아올 5월 5일. 이번 어린이날에는 주위의 동생, 조카, 자녀들에게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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