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문선아] 겨울이면 떠오르는 스포츠 중 빙상 위의 예술로 불리는 ‘피겨 스케이팅’이 있다. 겨울이면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활동이 자주 들려온다. 지난 1월 10일에는 만 11세의 유영 선수가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6’에서 여자 싱글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해 김연아 선수의 최연소 기록을 깨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렇듯 피겨스케이팅에서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김연아 선수,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지금은 한국의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녀의 첫 피겨스케이팅 시작은 언제였을까?

▲ 피겨스케이팅에서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김연아 선수 (출처/김연아 페이스북)

1990년생인 그녀는 7살 때인 1996년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군포 신흥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동계체육대회 등 각종 국내 피겨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우승과 12살에 완성한 트리플 점프 5종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연아는 2003년 국가대표로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김연아는 세계 신기록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이다. 200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총점 207.71을 기록해 여자 싱글 부문에서 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다. 다음 해인 2010년에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 프로그램 78.50점, 프리 스케이팅 150.06점, 총점 228.56으로 다시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현재까지 프리 · 총점에서의 세계 기록 보유자이다. 그녀는 2007년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 이래로 여자 싱글 부문의 쇼트 · 프리 · 총점에서 모두 11번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김연아는 2009년 4대륙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우승, ISU 그랑프리 파이널 3회 우승을 통해 피겨 스케이팅의 여자 싱글 부문에서 4대 국제 대회의 그랜드 슬램을 사상 최초로 달성한 선수이다. (출처/올댓스포츠 홈페이지)

또한 2009년 4대륙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우승, ISU 그랑프리 파이널 3회 우승을 통해 피겨 스케이팅의 여자 싱글 부문에서 4대 국제 대회(동계 올림픽, 세계 선수권, 4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의 그랜드 슬램을 사상 최초로 달성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녀가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언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의 우수한 실력만이 아니다. 그녀가 가진 재능과 부를 함께 나눌 줄 아는 선수였다. 척박한 환경에서 운동한 자신과 달리 후배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겨스케이팅 발전에 기부는 물론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조언해준다.

▲제 2회 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 개막식에 홍보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아. (출처/김연아 페이스북)

CF나 화보 활동 등으로 번 수입으로 난치병 어린이 성금,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위한 기부, 피겨꿈나무 장학금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그녀의 진심을 전달했다.

또한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2018년 동계 올림픽의 대한민국 평창군 유치 홍보 대사로 적극 활동하여, 동계 올림픽의 대한민국 평창군 유치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동계 올림픽 유치 공로로 그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는 김연아. (출처/김연아 페이스북)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며, 세계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 2014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해 빙상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그녀의 모습을 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모습으로 국내외 피겨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하고 있다.

김연아 선수가 선수 은퇴 후에도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제 2의 김연아가 나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녀처럼 대한민국을 밝혀줄 많은 인재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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