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직자였던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는 “인생이 어려워질 때는 1야드씩 어려워지고, 인생이 쉬워질 때는 1인치씩 쉬워진다.”라고 했다. 비교적 작은 차이였지만, 대선 패배를 당한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에 잘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제(15일)는 민주당이 창당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차기 정권의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또 손학규 전 대표는 6개월간의 연수를 위해 독일로 출국했다. 승패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는 요즘 대한민국 정치권의 풍향이다.

   1년 전만 해도 민주당은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 세력과 힘을 합쳐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 꿈이 산산이 무너진 것이다. 또다시 5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5년 후라고 해서 기회가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5년 전의 패배야 기정사실인 양 정해져 있었지만, 이번 대선은 민주당으로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한 패배라서 충격이 더 크다. 승리방정식이 뻔히 보였는데도 전혀 엉뚱한 선택을 한 민주당, 어쩌다 ‘선거에 귀재’라는 민주당은 이런 결과를 자초했을까?

   주지하듯이 1년 전만 해도 새누리당이 절체절명에 처해 있었다. 새누리당은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등으로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위기에 내몰리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당명을 바꾸는 등의 변신을 서둘렀다. 그럼에도 작년 4월 총선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민주당에는 그런 치명적인 사건들이 없었고, 시민사회 세력의 가세로 욱일승천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 직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두었고, 야권이 주창하던 ‘정권교체론’이 설득력을 발휘하던 시점이었다.

   이것이 독(毒)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김용민 막말 파문’이 신호탄이었다. 김용민 씨에 대한 공천 자체가 불씨를 스스로 안은 격이었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록 과거사였지만 김용민 씨의 막말이 사실로 드러난 이상, 공천 철회만이 공당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국민이 아니라 나꼼수를 선택했다. 이걸로 총선은 하나마나였다. 이로써 야권 연대에 성공했으면서도 ‘새누리당 정권 심판론’을 통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민주당의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김용민 파문’은 일회성 에피소드가 아니다. 민주당이 이런 사람을 당선이 유력한 지역에 공천을 하고 문제가 생겨도 원인 제거를 하지 않을 만큼 민심과는 동떨어진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민주당은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다. 민주화 운동에 복무했었다는 자부심, 거기다 근래 들어서는 평화·환경·복지 등의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자부심으로 뭉쳐 있었다. 반면에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독재정권의 후신’ 정도로 폄하하기 일쑤였다. ‘오만과 독선’의 위험이 상존해 있었던 것이다.

   나르시시즘에 매몰되다 보니 민심의 동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자기들이 설정해 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다. 김용민 건이 대표적이다. 누가 봐도 이것이 화약고일 수밖에 없었는데, 대선을 앞둔 그 중요한 총선에서 민심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했다는 것은 나르시시즘 외에는 달리 분석할 길이 없다. 이 외에도 지역 대표든 비례 대표든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인사들을 다수 공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코드만 맞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운동권 정당’이라는 비판에 늘 시달린다. 많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유능하고 훌륭한 편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제도권 마인드가 부족한 의원들도 적지 않다. 여당 시절에도 야당 투사와 같은 언행을 일삼는 의원들도 있었다. 심지어 장관까지 지낸 여당 의원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하는 사례마저 있었다. 이런 극소수의 강경파들이 민주당을 좌우하는 구조이다. 국가 경영을 맡겠다는 정당이 운동과 제도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치 연속극을 상영하듯이 하는 민주당의 반값 혹은 공짜 시리즈 약속은 민주당의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는 누구나 바라는 이상형이지만, 집권을 꿈꾸는 유력 정당이라면 현실적 고려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제 조건에 맞는 복지 수준과 국민의 담세 수준에 대한 정교한 설계 없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겠다.’는 식의 포퓰리즘 복지는 두고두고 부메랑이 될 뿐이다. 이런 민주당의 ‘닥치고 복지’ 노선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책임감이 부족한 정당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대북관도 문제이다.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햇볕정책은 이름 그대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민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당근만 구사하거나 저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햇볕정책의 본령에 어긋나는 일이다. 게다가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대화를 구걸하는 것은 기존의 낡은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민주당이 이런 대북관과 대북정책을 고수하는 한, 외연을 넓히기는 어렵다. 더욱이 종북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요컨대 민주당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행태가 국민의 정서와 시대 흐름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은 관념 과잉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관념은 1980년대 운동권 시절에 터득했던 총체적 변혁 노선의 잔재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때의 낡은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민주당 내에는 거의 없지만, 알게 모르게 그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 일각의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인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념과 습속이 미래지향적인 진보 정당 혹은 개혁 정당으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민주당이 당연히 이겼어야 할 제19대 총선과 제18대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위와 같은 구조적인 한계 말고도 친노 패권주의가 원인 제공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친노파는 내심 ‘어게인 2002’를 꿈꾸며 민주당을 다시 장악하고 자파로의 집권을 기획했다. 실제로 이 기획의 절반은 성공했다. 당권을 장악했고, 문재인이라는 친노 핵심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안철수 후보마저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런 소탐대실이 정권 교체의 꿈을 무산시키고 앞으로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폐족으로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친노 패권주의는 친노파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안타깝게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 했던 민주당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당 전반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친노 패권주의가 들어설 공간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계승한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면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아름다운 단일화에 성공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바보 노무현’을 외치기만 했지 그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민주당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승패는 현상적으로는 작은 차이에서 갈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당연히 이겼어야 할 싸움에서 졌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게 근본적인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걸 의미한다. 민주당에도 내세울 만한 전통이 있고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시 일어설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고질병을 고치지 않으면 재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핵심은 노선이라기보다는 행태이다.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행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미국 록 음악가인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은 “판박이로 사는 사람은 패배자다.”라고 했다. 낡은 관행과 관념과 조직 문화가 연이은 패배를 불렀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고치지를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 새누리당도 낡은 면모가 적지 않지만, 이를 믿고 민주당이 쇄신을 게을리 한다면 새로운 진보 정당 혹은 개혁 정당에 의해 도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야당이 건재해야 정부·여당도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의 환골탈태는 너무나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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