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SBS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최근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이들의 관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여야 했을까? 그리고 아버지 이성계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정몽주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초장, 중장, 종장 총 3번을 치러야 하는 과거에서 모두 장원을 독차지 하는 등 인정받는 고려시대 최고의 천재 중 한명이었다.

정몽주는 정도전과 함께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성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정통 사대부로 명을 섬기는 친명파에 속했다. 때문에 원과 친분을 끊지 않는 고려가 괘씸하여 명나라가 철령위를 달라고 요구했을 때, 전쟁을 하자는 최영과 달리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이성계와 그 뜻을 같이 했다.

또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고려 창왕을 쫓아내고 공양왕을 대신 세웠을 때도 정몽주는 이성계와 함께 했다.

▲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한 것에 대노한 이성계(출처/육룡이 나르샤 스틸컷)

하지만 문제는 이성계가 정도전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정몽주가 이성계를 도왔던 것은 어디까지나 무너져 가는 고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개혁이었을 뿐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몽주는 그만큼 뼛속까지 고려인이었다.

때문에 역성혁명(다른 성씨로 인해 왕조가 교체됨)을 꾀하고 있는 이성계와 정도전은 정몽주에게 좋은 사상의 벗이었고 동문의 사제였지만 결국 정적이 되고야 만다.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이미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성계와 정도전을 제거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1392년 3월, 명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갔던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낙마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이성계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은 정몽주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정몽주는 바로 지금이 이성계를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정몽주는 언관(임금에게 간언을 하는 관원)들을 시켜 자신의 정적인 정도전과 조준, 남은 등의 이성계 일파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유배중이던 정도전은 감금되고 조준, 남은은 귀양을 가게 된다.

아버지가 왕좌에 오르는 것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이 소식을 듣고 몸이 성치 않은 이성계를 서둘러 귀경시킨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병문안을 하러 왔는데 이성계는 정몽주를 평소와 같이 귀하게 대했다. 이성계는 정몽주의 높은 성리학 성취도와 탁월한 외교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기 때문에 비록 현재의 정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때문에 이성계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만 생각했을 뿐 그를 제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낙마사고때 정몽주가 한 행동을 보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때 정몽주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끝에 마지막으로 그에게 시조를 읊으며 의중을 물어봤다. 이 둘 사이에 오간 시조가 그 유명한 ‘하여가’와 ‘단심가’다.

이방원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라며 자신과 뜻을 함께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정몽주는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라는 답가로 고려에의 충절을 나타냈다.

결국 이방원은 정몽주를 설득시키는 것에 실패하였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 부하인 조영규 등을 시켜 선죽교에서 살해하게 된다.

새로운 국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고 여겼던 정몽주를 잃은 이성계는 자신에게 어떤 상의도 없이 일을 도모한 이방원에게 크게 분노하게 되어 이방원과 사이가 멀어졌고 이는 후에 벌어질 왕자의 난의 불씨가 되는 사건으로 남는다.

아버지와는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지만 정몽주를 살해함으로써 좀 더 빠른 조선 건국에 이바지하게 된 이방원. 이방원은 비록 자신이 죽이기는 했지만 그 역시 정몽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훗날 태종이 된 1405년 정몽주를 영의정에 추종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기도 했다.

멸망을 향하는 고려와 건국을 맞이하는 조선의 숨 가쁜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 역사를 알고 보면 더욱 뜻깊은 감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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