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선거는 도덕적으로 참혹한 일이며, 피만 흘리지 않았지 전쟁처럼 사악하다. 선거에 관여하는 자는 누구나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제18대 대선 투표일이 하루 남았다. 역대 어느 대선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초박빙의 승부라서 그런지 선거 막바지까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추태를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비전의 경쟁이기를 염원했지만, 후보들의 역량이나 각 정당들의 캠페인 양상 모두 실망 그 자체였다. 아무쪼록 당선자 쪽은 국민 통합을 위해 배전(倍前)의 노력을 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야권의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필자는 야권이 이번 대선에서 유리한 이유에 대해 작년 7월에 펴낸 졸저(拙著) 『2012 보수 vs 진보』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① 정부·여당 심판론이 상당히 먹힐 가능성이 높다. ② 야권의 단일화 때문이다. ③ 수성(守城)의 의지보다 탈환의 의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④ 포퓰리즘 경쟁 때문이다. ⑤ 지역 구도의 변화 때문이다. ⑥ 야권은 몇 차례의 후보 단일화 작업을 통해 흥행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⑦ 야권의 캠페인 능력 때문이다.

   위 일곱 가지 이유를 부연하자면, 첫째, 정부·여당 심판론이다. “대선까지는 1년 이상 남아 있어 그 때에 정권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정권의 최종 점수가 좋다 하더라도 야권은 아킬레스건만을 들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반사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라이벌이었고 이명박 정권 내내 대체로 갈등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대선에 들어가면 유권자들 가운데는 박 전 대표를 ‘이명박 대통령의 라이벌’보다는 ‘새누리당(당시는 한나라당)의 후보’로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둘째, 야권의 단일화이다. “야권은 2010년 지방 선거 등을 통해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바가 있기 때문에 2012년 대선에서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킬 전망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로 표의 분산을 막는 플러스 효과도 있지만, 단일 대오를 통해 야권 성향의 활동가들을 대거 결집시킬 것이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과 촛불 시위 등에서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의 갈등으로 구심력(求心力)보다는 원심력(遠心力)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탈환의 의지이다. “원래 지키려는 자보다 빼앗으려는 자의 기세가 더 강한 법인 데다, 야권 사람들의 성향이 대단히 도전적이고 저돌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야권은 기세등등했다. 비록 문재인 후보의 상품성이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니라서 ‘왜 문재인인가?’를 홍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정권 교체론’은 간단명료한 데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전파하는 데 별다른 애로가 없었다. 게다가 여권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이 야권의 응집을 쉽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넷째, 포퓰리즘 경쟁이다. “야권은 복지 등 포퓰리즘 공세를 펼칠 게 뻔한데, 새누리당이 이에 대한 입장을 취하기가 무척 어렵다. 무시하기도 그렇고 끌려가자니 저쪽의 의도에 말리는 것 같아 진퇴양난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이슈를 넘어서는 새누리당 표의 좋은 이슈를 개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점에 있어서는 새누리당이 크게 점수를 잃지는 않았다. 야권과 함께 새누리당이 포퓰리즘에 빠져든 것은 부적절한 일이었지만, 이슈를 상쇄하는 효과는 있었다. 다만, 박근혜 후보의 정체성에 맞는 강점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다섯째, 지역 구도의 변화이다. “새누리당은 전통적으로 영남의 압도적인 지지가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 이후 부산·경남의 민심이 예전 같지가 않다. 거기다 야권 단일 후보가 영남 출신이면 더 더욱 이 지역의 표심이 흔들릴 것이다. 부산·경남은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자주 바꾼 저력을 갖고 있다. 이 ‘태풍의 눈’이 어디로 향할지 새누리당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는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고, 문 후보를 돕고 있는 안철수 전 후보 역시 부산 출신이다.

   여섯째, 단일화 흥행이다. “야권은 몇 차례의 후보 단일화 작업을 통해 흥행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게다가 비슷비슷한 후보군이 많아 예측 불허라는 점이 오히려 야권 경선의 매력과 흥행을 드높여줄 것이 확실하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후보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는 10년 이상 주목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이지 않는 이상, 대중의 싫증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단일화 흥행은 당초의 전망보다는 그렇게 성공한 편은 아니었지만, 박 후보가 신선한 이미지를 주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곱째, 야권의 캠페인 능력이다. “야권은 ‘선거에는 귀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동안의 여러 선거에서 그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전략과 전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일선 당원 혹은 운동원들의 열정과 역량 또한 새누리당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 야권은 감성적이고 새누리당은 이성적이라는 것도 그렇다. 특히 온라인 선거 운동의 측면에서는 새누리당을 압도하는 편이다. 캠페인 능력이 중요한 것은 갈수록 대선전이 박빙의 싸움으로 될 가능성이 높고, 대형 이슈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필자의 전망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말하자면 정상적으로는 새누리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제18대 대선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본선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내세웠다. 또 당초 야권 연대의 대상이었던 통합진보당이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야권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비록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중도적 유권자들의 상당수 이탈이 예상된다. 거기다 본선 경쟁력이 대단히 높았던 안철수 전 후보를 단일화 경쟁에서 사실상 배제함으로써 야권은 어려운 싸움을 자초했다.

   요컨대 새누리당으로서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는데, 이제는 해볼 만한 싸움까지 온 셈이다. 사실 안철수 전 후보가 도중하차할 때만 해도 새누리당이 승기(勝機)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개인기 면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 강하다는 평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구태의연한 캠페인에다 대세론에 안주함으로써 승기를 잘 살리지 못했다. 게다가 세 차례의 TV 토론에서 박 후보는 문 후보에 비해 비전이나 실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새누리당의 안 전 후보에 대한 과잉 반응 역시 적절하지 못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중대한 시기의 국가 지도자로서는 부족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중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말하자면 최선이나 차선이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악의 승리에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수수방관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도리일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유권자들이 어느 쪽을 더 나쁘다고 보느냐에 따라 이번 대선의 승패가 좌우되리라는 예감이다. 투표율의 등락도 나쁜 쪽에 대한 응징의 정서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위를 향해 애써 올라가려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는 드물며, 오히려 만만히 생각하고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할 때 그런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한다.”라고 일갈했다. 또 토머스 알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인생에서 실패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그들이 포기한 바로 그 순간 그들이 성공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투표율과 그 내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고 할 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쪽이 ‘최후의 미소’를 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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