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 나온『정치의 미래』란 책에서 테드 할스테드(Ted Halstead)와 마이클 린드(Michael Lind)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양분해 온 미국의 정당 체제가 국민의 생각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적으로 두 저자는 “양당은 지난 세기의 사상과 관습에 얽매어 다음 세기의 과제들을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라는 지적이다. 저자들은 42퍼센트의 미국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시하면서 양당 카르텔을 뛰어넘기 위한 일환으로 ‘혁신적 중도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할스테드와 린드가 주목하는 현상 가운데는 유권자들 중에서는 딱히 진보 혹은 보수라고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 유권자가 (진보적 가치인) 여성의 낙태 선택권과 (보수적 가치인) 학교 선택권을 모두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다원화 시대에서는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사람마다의 정치적 정체성을 한가지로 특정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대 흐름에 놓여 있는데, 기존 정당들은 지난 세기의 관행과 관념에 빠져 있어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들은 시대 흐름에 뒤처지고 유권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장 큰 당면 문제점은 선진국 정당들이 이미 극복한 낡은 행태와 습속(habitus)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구도가 ‘과거 대(對) 과거’의 양상을 띠는 현주소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박근혜 후보 쪽과 문재인 후보 쪽은 상대 후보 진영을 각각 ‘과거 세력’으로 비판하고 자신들에 대해서는 ‘미래 세력’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우리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미사여구들도 상투적인 구호일 따름이다.

  

 
   두 후보 가운데 누군가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과연 정치 발전이라는 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두 후보 모두 정치 혁신을 부르짖고 있지만,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몸부림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정치 혁신이 기존 정당 체제의 개혁을 가장 큰 전제로 한다고 할 때, 당선 쪽이든 낙선 쪽이든 과연 그 일을 해낼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무엇보다도 정치 혁신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정치 혁신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대선 이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자기 개혁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그 숱한 당명 개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주류 정당들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인물들이 충원되고 당의 색깔이 다소 바뀐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정당들에 흐르는 당풍(黨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사당(私黨)의 성격이 여전하고, 이번에도 확인되듯이 이합집산이 다반사이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의 발목을 잡아 온 지역주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대척점에 서 있는 만큼 각각의 단점이 많이 다르다.

   새누리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당을 ① 부자 정당 ② 웰빙 정당 ③ 노쇠 정당 ④ 수구 정당으로 바라본다. 첫째, 부자 정당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가운데는 좋은 집안, 명문 학교 출신과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부자 혹은 엘리트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부정적으로 간주할 일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특정 계층에 치우치기 쉽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부자 감세’란 야권의 비판이 먹혀드는 것도 그렇고,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자기 편 감싸기’도 그렇다.

   둘째, 웰빙 정당이다. 여기서 웰빙(well-being)이란 말은 국리민복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권력 추구에 훨씬 몰입한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해 국회의원이란 자리를 웰빙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이미지로 비치고 있고, 심지어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중에서도 이런 자조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와 거리가 멀다는 인상도 같은 취지이다. 새누리당이 야당이었을 때는 대여 투쟁에 소홀한 태도를 지칭하기도 했다.

   셋째, 노쇠 정당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여타 정당의 국회의원들에 비해 나이가 많다. 당원들 역시 그렇다. 보수 정당이기도 하고, 엘리트 출신이 많아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강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륜이 출중하다는 의미 또한 띠고 있으니까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요컨대 핵심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얼마나 가까운가 여부이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다.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넷째, 수구 정당이다. 앞의 세 가지 점을 포함해서 새누리당은 수구(守舊) 정당이란 비판에 자주 시달린다. 보수와 수구는 엄연히 다르다. 즉 보수 정당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구 정당이라는 법은 없다. 새누리당이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연패한 것도 수구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환골탈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수구 정당에 머물러 있다. 수구적인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다 보니 악순환에 빠져 있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보다도 더 많은 물갈이를 해 왔지만, 비슷한 사람들로 충원함으로써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민주당은 ① 대중영합주의 정당 ② 나르시시즘 정당 ③ 관념주의 정당 ④ 운동권 정당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첫째,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이다. 어느 정당이든 표를 의식하다 보니 대중영합주의 경향을 띠는 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 정도가 심하다. 다수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이것과 대중영합주의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은 ‘보편적 복지’라는 미명 아래 무상 또는 반값 정책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이 저지른 가장 대표적인 대중영합주의는 2002년 대선 때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었다.

   둘째, 나르시시즘 정당이다. 주지하듯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정신분석학 용어로서 심한 자기애(自己愛)를 일컫는다.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사가 많아서인지 자신이 속한 정당 또는 진영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반대로 새누리당이나 보수 진영에 대해서는 끔찍이 싫어하거나 심지어 그 존재를 부정하려는 타성마저 있다. 나르시시즘이 강하다는 건 곧 염치가 없다는 말과 상통한다. 같은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한 진영으로 묶을 수 있는 이정희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우를 보면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셋째, 관념주의 정당이다. 정당은 같은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니까 이념 혹은 관념 자체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 이념과 관념이 현실성을 상실할 때에 문제가 생긴다. 말하자면 국가 경영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관념과 현실을 조화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관념주의가 강한 편이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과거 변혁 운동 시절에 가졌던 마르크스주의 혹은 주체사상의 잔재를 떨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 낡은 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관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관성은 여전한 것이다.

   넷째, 운동권 정당이다. 앞의 세 가지를 통칭해서 민주당을 운동권 정당이라 부를 만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당 안에는 민주화 운동이나 변혁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다. 운동권 경험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민주화 운동 자체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었고, 변혁 운동도 보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용납할 측면이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또 집권 여당의 일원이 되고서도 운동권 때 지닐 수밖에 없었던 행태와 습속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과 정치와 국정은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다.

   이상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낡은 요소들을 요약했다. 물론, 이 두 정당이 가진 장점들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일보하는 측면도 있을 터이다. 또한 두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 중에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필요한 훌륭한 인재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두 정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에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란 점만은 지적할 수 있겠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가운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관계없이 새로운 정당의 등장이 불가피하다. 21세기에 맞는 국민 정당, 정책 정당, 비전 정당을 기대한다.

   “흘러간 물은 방아를 돌게 할 수 없다.”라고 했다. 투표일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온갖 장광설과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난무하지만, 그럴수록 기존 정당 체제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래서 두 후보 가운데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권을 해야 할지,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자이지만 그것은 다수가 옳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전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중에서 가장 악이 적은 전통이기 때문이다.”라는 칼 포퍼(Karl Popper)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시점이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