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어떻게 성공해야 하는가
   올해 나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세계적인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은 역작이다.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James A. Robinson)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함께 쓴 책이다. 두 저자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왜 어떤 나라들은 순항하고, 또 어떤 나라들은 악순환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핵심 취지는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가 발전과 번영을 불러오고, 지배 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낳는다.”는 점이다. “포용적인 제도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유인을 제공한다. 국가 실패의 뿌리에는 이런 유인을 말살하는 수탈적 제도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들은 ‘무엇이 남·북한의 운명을 갈랐을까’라는 제목의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이렇게 역설하고 있다. 먼저, 저자들은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수립했고, 남한은 시장경제를 세운 사실을 전제하면서 “남·북한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걸은 연원은 분명하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 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저자들의 부연 설명을 더 들어보면, “양측 모두 중앙집권화의 역사를 통해 성장이 가능했지만, 원래 그런 권력이란 좋게도 쓰이지만 나쁘게도 쓰이는 법이다. 남한은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수출과 혁신을 장려하고 공공재를 장려했지만,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해 권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한국은 재능과 혁신, 창의성에 보답하는 경제를 수립한 덕분에 제조업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제도적 차이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죄다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는 것은 아니며, 언뜻 보기와 달리 북한이 가난한 것도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제도의 질’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서 모두 성공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식민지 지배를 겪은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크게 실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세계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연출했다는 데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날을 내다보는 지도자들이 있었고, 국리민복을 걱정했던 공직자들이 있었으며,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산업 전사들이 있었다. 또 대한민국이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 그리고 지식정보화라는 진일보를 거듭할 수 있었던 데는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우리 국민들의 혜안이 작용했다. 통칭해서 제도를 설계하고 이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승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역사의 전개 과정에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두루 존중해야 하고, 물질적 성장 못지않게 정신적 성숙을 함께 구비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국가 과제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더불어 ‘나눔과 헌신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는 국민도 많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이 부강하면서도 공정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앞의 저자들은 ‘제도의 지속적인 혁신’도 말하고 있다. 당연지사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대명제이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고쳐야 할 제도 요소들은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 속에서 나온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법치주의의 동요, 시민정신의 취약, 배금주의, 공동체 문화의 약화, 빈부 격차의 심화와 일자리의 부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의 무능과 부정(不淨)이야말로 가장 큰 난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두를 정치인들에게 돌리기에는 무리지만, 정치 수준을 선진화하는 일에 정치인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국민의 인내심에 바닥이 난 나머지 갑자기 표출한 것이 ‘안철수 현상’ 아닌가! 그 안철수 전 후보조차도 낡은 체제에 동승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여하튼 다음 정부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법질서를 확립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창출하며,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지도력 또한 다음 대통령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해 줄듯이 대중영합주의에 빠지기보다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를 분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출처 - 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지난 두 차례의 대선 후보 TV 토론은 무척 아쉽다. 많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들은 있었지만, 국가 비전에 대한 혜안은 돋보이지 않았다. 격조 높은 토론이었다기보다는 말싸움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통찰력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토론이었다.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이정희 후보야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공언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 후보 공격에 시간을 허비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실망이 크다.

   솔직히 두 후보의 말이 아무리 현란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속성을 감안할 때 그 말의 진정성을 신뢰하기가 쉽지 않은데, 토론을 보고서는 과연 이들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모들이 작성한 내용을 소화하기에 급급한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래서 당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이정희 후보의 좌충우돌이 오히려 돋보였다고 해야 할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앞에서 말한 제도의 수준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이것은 곧 리더십의 실패로 치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재와 강력한 카리스마가 가능했던 군사 정권은 차치하더라도 민주화 이후 들어선 문민 정권들이 모두 실패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대통령과 소속 정당들이 집권 의욕은 강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국가 경영 능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더욱이 다음 대통령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취임하기 때문에 남다른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초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어 국가 경영의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선거 결과가 반드시 후보들의 국가 경영 능력에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어서 ‘일단 이기고 보자.’는 강박관념이 두 진영을 지배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준비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후진국으로 추락하느냐, 혹은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난파선의 신세가 될지는 아무도 전망하기 어렵다. 글로벌 시대라서 외부 변수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변수조차도 어느 정도는 우리가 하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유능한 지도자와 현명한 국민의 조합이 절실한 까닭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은『대한민국 성공학』을 늦어도 내년 초에는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인간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완전무결할 수 없다. 처음에는 하찮은 결함으로 여겨지던 것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큰 문제가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법률이건 제도건 언제나 현상에 맞는 손질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는 “지도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다음 대통령이 깊이 명심해야 할 금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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