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정권 1주년과 2013년 대한민국 정권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광기는 개인에게는 예외적인 것이나, 집단에게는 통례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사회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지상에 천국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인간만이 그의 동료를 위해 준비하는 지옥을 만들 뿐이다.”라고 했다. 인류 사회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체제는 1980년대 말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유독 북한만은 그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는 17일은 김정일 전 위원장이 1년 전에 사망한 날이다. 김정은 후계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된 것이다. 반대자들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1년이나(!) 버티고 있는 김정은 정권을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김정은 정권의 철권통치는 일단 빈틈이 적어 보인다. 중국의 작가였던 린위탕(林語堂)은 “민중이 굶었을 때 제국은 붕괴되고, 어떤 강력한 정권도 공포 정치도 사라졌다.”라고 했는데, 김정은 정권의 유효기간이 아직 남았는가 보다.

   물론, 김정은 정권의 지속을 장담할 수는 없다.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는 닫힌 체제라서 이미 한계선을 넘어선 북한 인민들의 기아 상태를 개선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종전처럼 강압과 세뇌를 통해 어느 시점까지는 체제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그런 총동원 체제에 균열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이 이제 겨우 30세를 넘긴 약관에 불과해 아무리 후견인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권력 기반의 안정을 기약하기는 어렵다.

   주지하듯이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벼랑 끝 전술’과 ‘선군(先軍) 정치’이다. 핵무기를 지렛대로 한 벼랑 끝 전술은 북한으로서는 대단히 유효한 카드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사생결단의 협박 앞에 국제사회는 늘 전전긍긍해 왔다. 선군 정치는 벼랑 끝 전술과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수단이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군부에 강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군부의 선택에 따라 이 정권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이 북한 체제는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후안무치한 체제이다. 인민의 굶주림만으로도 용서가 안 되는데, 탈북자에 대한 공개 처형 등 인간의 존엄성은 상상하기가 불가능하다. 엄연히 말해서 사회주의 체제도 아니다. 3대 세습은 사회주의 원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한 역사가 없다. 봉건 왕조와 비슷하지만, 봉건 왕조에는 일정한 규범과 책임감이 있기 마련인데, 북한 체제에는 이런 것도 없다.

   더 이상의 존재이유가 없는 북한 체제이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협상 파트너인 북한 지도부를 인정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가장 논란 많은 대북 정책은 소위 ‘햇볕 정책’이다. 잘 알고 있듯이 김대중 정권이 1998년 집권 후 햇볕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구했고, 그 결과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이전과는 현격히 다른 남북관계를 전개했다. 노무현 정권도 햇볕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대북 정책을 구사했다.

   햇볕 정책이 남북한 간에 해빙 무드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 체제에는 참다운 개혁·개방은 없고, 오히려 대한민국 내의 남남 갈등과 안보의식 해이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그 개방도 북한의 외화 벌이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있었다. 거기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불법적인 송금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변화가 없다면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견지해 왔다.

   진보 진영에서는 ‘전쟁이나 평화냐’라는 이분법으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 개혁은커녕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 등 대한민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도발을 자행해 왔다는 점에서 과연 그동안의 남북관계 개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지적에 대해 겸허할 필요가 있다. 원론적으로는 햇볕 정책이 맞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이 북한의 외투를 더 두텁게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도 일리가 있다.

   요컨대 ‘햇볕이냐 바람이냐’는 부차적인 선택이다. 핵심은 외투를 벗기는 일이다. 바람보다는 햇볕이 당연히 바람직하지만, 북한이 햇볕을 악용하는 현실이 문제이다. 이런 논법에 대해 진보 일각에서는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라고 하는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힘과 원칙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라고 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말처럼.

   사실, 중국의 지원만 없었다면 북한 체제는 벌써 무너졌는지 모른다.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마저 무분별하게 장단을 맞춘다면 북한 체제에게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가 어렵고, 개혁·개방을 하더라도 전시용에 그칠 따름이다. 왜냐하면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언급했듯이, “개혁·개방을 하면 북한 체제가 망하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 인민들이 망한다.”는 방정식을 북한 지도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퇴양난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 내부에 있다. 북한 체제에 저자세를 보이거나 심지어 추종하는 집단이 있으니, 이름 하여 종북주의 그룹이다. 종북주의 그룹은 1980년대에 체제 변혁 운동 과정에서 운동권의 대세를 장악했고, 지금도 제도 정치권과 노동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북한 인민들이 기아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을 추진하면서 북한을 공공연히 미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적도 있다.

   종북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진보 진영에 만연해 있는 좌파 민족주의는 일제 식민지 시절에나 통용되는 시대착오적인 관념이다. 민족주의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우리 민족끼리’ 뭉쳐야 한다는 의식이나 미국에 대한 강한 배타성은 옳지 않을뿐더러 작금의 글로벌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진보 진영이 즐겨 쓰는 ‘내재적 비판’은 그 나름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진보 진영의 일방적 접근은 문제가 있다. 보수 진영의 편파성도 잘못이지만, 지나치게 반(反)체제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진보 일각의 경향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6·25 전쟁에 대해 요즘엔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총을 쏜 것이 아니다.”라며 양비론으로 대하거나 북한 정권에 경도되어 있는 진보 인사들은 여전히 많다.

   좌파 민족주의가 진보 진영에 둥지를 틀고 있다 보니, 진보 진영 전체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진보 진영의 확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 나아가 진보 진영과 연대를 해 온 민주당에도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 정책이 빛이 바랜 이유 중의 하나도 진보 진영의 이런 성향 때문이다. 민족주의를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진보 진영의 앞날을 위해서도 지나친 민족주의를 삼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사이에는 사회·경제 정책에서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차이가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과는 다소 다르지만, 대체로 원칙론에 가깝다. 반면에 문 후보의 대북 정책은 햇볕론에 속한다. 문 후보와 연대하는 안철수 전 후보는 원칙론자이다.

   문재인 후보가 햇볕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 진정한 의미의 햇볕 정책이라면 당연히 지지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밀실에서 뒷돈으로 거래하는 식의 대북 접촉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고, 교류와 협력을 하더라도 확고한 원칙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는 종북주의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힐 책무도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다음 정권도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한반도 공동체의 복원이라는 꿈을 포기해서도 한민족이란 정체성을 망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괴물과 다름없는 북한 체제를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체제인 듯이 간주하는 관성은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시민사회 역시 북한 체제와 북한 인민을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이고 유의미한 대북 정책이 가능하다.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세계사 속에서 모든 주의(主義)나 유파(流波)는 하나의 시기를 갖는 데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지나가는 일은 없다.”라고 했다. 한반도의 정통성은 대한민국에 있다. 그리고 북한 체제는 대한민국 역사의 사생아다. 적어도 한반도의 종기(腫氣)다. 보수든 진보든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들의 한반도 정책을 예의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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