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다산 정약용은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면서 발명가, 건축가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인물이다.
다산은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기초적인 학문을 배웠으며 4세에 천자문을 읽혔고 7세에는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라는 시를 썼다. 10세에는 이 전에 썼던 자작시들을 모아 삼미자집까지 편찬했다고 한다.
일찍이 장가를 들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으며 22세에 진시과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글짓기 시험 등에서 항상 수석을 차지하면서 정조의 눈에 들게 되었다.
배다리와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 화성을 건설하면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경기도의 암행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들을 잡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유박해 때 모함에 빠져 모진 고문을 받고 18년의 긴 유배생활을 강진에서 시작하게 된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저술들을 많이 지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히려고 노력했다.
그 중 유명한 목민심서는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으로 각 편은 6조로 나뉘어 72조로 편제 되어있고 48권 16책으로 되어있다.
또 흠흠신서는 형사사건을 다루는 관리들의 자세에 관해 적혀있는 것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역대 모범적인 판례를 선별해 해설과 비평을 담고 살인사건 심리의 실무 지침서라 한다.
이렇게 18년의 긴 유배생활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긴 유배생활에도 좌절하지 않고 부국강병을 이루려 노력했던 다산 정약용. 높은 자리에서도 백성의 편에서 생각하려 했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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