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6년 전 오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이유와 갈등은 뒤로하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서거 소식은 국내를 비롯해 외신에서도 속보 보도됐다. 그리고 오늘(5월 23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 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한 민노당의 홈페이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가장 독특한 이력의 대통령이다.

1946년 8월 6일(양력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우수한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해 1966년 졸업했다. 그 후 어망 제조업체에 다니다 그만 둔 그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71년 육군 만기제대한 뒤 네 번째 도전인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흔히 엘리트코스라 불리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학사, 석사 등의 과정을 거친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성장과정임이 틀림없다.

▲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곁을 떠난지 6년이 됐다 (출처/MBN캡쳐)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

1981년 제5공화국 정권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釜林事件)의 변론을 맡은 것을 계기로 학생·노동자 등의 인권사건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제안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그리고 1990년. 통일민주당·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대하여 '부도덕한 야합'이라 비난하며 정치적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고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게 된다. 출마와 낙선을 경험한 그는 2000년 8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2년 11월 18일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가 되었다.

▲ 노무현은 2002년 11월 18일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국민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가 되었다. (출처/MBC 뉴스데스크 캡쳐)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는 신의 한수 였다. 2002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 2476만 141표 가운데 1201만 4277표(48.91%)를 얻어 1144만 3297표(46.59%)를 얻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된 뒤,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참여정부, 고난과 외로움의 시작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취임한 지 1년. 고난이 시작됐다. 2004년 초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절한 노 전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위기를 맞게 된다.

▲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만에 그는 대통령에 복귀하게 됐다. (출처/SBS캡쳐)

결국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기습상정하게 되고, 다수를 점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투표해 찬성 193, 반대 2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킴으로서 당시 국무총리 고건이 직무 대행하게 됐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잇따랐고,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만에 그는 대통령에 복귀하게 됐다.

● 안녕, 바보 노무현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그는 고향인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의 봉하마을로 귀향하여 오리농사, 마을청소에 참여하는 등 평범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이 역시 역대 대통령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그러나 퇴임당시 대통령 재임시의 기록물 복사본을 가지고 귀향한 것과 관련해 '국가기록물 무단유출'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에 의하여 측근과 친형, 부인·아들·딸 등이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2009년 4월 30일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됐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23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내용의 유서를 컴퓨터에 남기고 사저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면서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에 많은 이들은 그리움을 표하고 추모를 하고 있다. 비록, 올해는 너무도 조용하게 보내는 것 같은 그의 추모행사지만, 그의 독특하고 아름다웠던 발자취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빛이 되고 있다. 갈등과 격차가 더해지는 요즘, 그의 소통이 더욱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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