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권 사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는 “부(富)는 분뇨와 같다. 그것이 축적되어 있을 때에는 악취를 풍기고 뿌려졌을 때에는 흙을 기름지게 한다.”라고 말했다. 진부한 느낌마저 주는 톨스토이의 금언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오늘의 세계 때문이 아니겠는가. 부의 불평등에 관한 한, 이미 상위권에 올라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새겨야 할 참으로 소중한 경구(警句)이다.

   이제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 야구의 금년도 일정은 모두 끝났다. 지금은 이른바 ‘스토브 리그’로서 선수들을 주고받고 연봉 협상을 벌이는 시즌이다. 최근에 FA(Free Agent) 제도에 힘입어 팀을 옮긴 선수들이 여러 명 있었다. FA는 자유 계약이란 뜻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1군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가 희망하는 대로 팀을 옮길 수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FA 선수들에 대한 쟁탈전이 치열하다 보니 몇몇 인기 선수들은 돈방석에 앉는다.

   재력이 튼튼하거나 투자를 꺼리지 않는 팀들이 내년의 성적 향상을 위해 실력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올해도 ‘돈의 전쟁’은 있었다. 예컨대, 롯데 자이언츠의 김주찬 선수는 4년 동안 50억 원을 받는 계약 조건으로 10년간 몸담았던 팀을 떠나 기아 타이거즈로 옮겼다. 이 밖에도 많은 선수들이 잔류든 이적이든 고액의 조건으로 FA의 혜택을 입었다. 과거에도 그랬다.

   FA는 선수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필요한 제도이다. 또 전력이 약한 팀이 FA를 통해 우수한 선수를 받아들임으로써 전력의 평준화를 이룰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과도한 돈이 오고가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선, 재력이 탄탄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 간에 오히려 전력 차이가 커지는 폐단이 있다. 또 스타플레이어와 평범한 선수 사이의 위화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혹자는 경쟁 사회에서 그런 차이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단언할지 모르겠다. 물론, 선수들의 기량에 따라 해마다의 성적이 좌우되는 프로 야구의 속성상 연봉의 격차는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이다. 게다가 FA를 통해 거액의 몸값을 받은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FA가 시장가격보다 훨씬 많이 호가(呼價)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FA 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꼭 FA가 아니더라도 프로 야구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는 ‘돈이 지배하는 스포츠’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이다. 유럽의 프로 축구 리그와 미국의 메이저 리그 등 선진국 프로 스포츠는 더 그렇다. 특히 유럽 프로 축구는 재력이 강한 몇몇 팀들이 리그를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팀들은 들러리 수준이다. 인기 선수들의 트레이드가 리그 중간에도 지나치게 자주 일어난다. 그럼으로써 몇몇 인기 선수들의 몸값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다.

   돈이 지배하다 보니 ‘승부 조작’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수년전 이탈리아 프로 축구 1부 리그인 세리에a에서는 몇몇 최상위권 팀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하여 이들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된 적이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의혹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여 상당수의 선수들이 단죄를 받고 영구 제명되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프로 스포츠가 얼마나 돈에 오염되어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요컨대 심신 단련과 단결심 고취의 도구여야 할 스포츠가 프로로 바뀌면서 물신주의가 판을 치는 살벌한 머니 마켓으로 전락해 있는 상황이다. 비단 스포츠뿐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도 하나의 시장이 아닌가. 부모나 조부모의 재력 여하에 따라 학력(學力) 수준이 결정되고, 이것이 인생행로를 결정짓는 것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학교마저도 시장주의에 포섭되고, 사교육 시장의 들러리로 전락해 있다는 말이다.

   금권 정치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실력과 통찰력보다는 재력이 지배하는 정치라면, 다수 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대변될 리 만무하다. 기득권의 지배 현상을 완화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이를 공고히 하는 데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금권 정치의 이면에는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있다.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경유착의 관행은 건전한 기업 활동의 의욕을 꺾을 수밖에 없다.

   공직자들의 비리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청렴지수가 대단히 낮은 데는 정치권의 금권정치도 한몫을 하고 있지만, 공직자들의 비리 역시 거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울고검의 한 부장검사가 금품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처럼 신분이 보장되고 생활 여건이 양호한 법조인들마저 돈의 노예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공직사회나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가능하겠는가!

   최후의 보루여야 할 종교는 어떤가. 기독교와 불교 할 것 없이 물신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50대 교회의 목록에 우리나라 교회가 그 절반인 25곳이라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야에서 헐벗는 군중들과 동고동락했던 예수가 지켜본다면 혀를 끌끌 찰 만한 몰골이다. 불교는 그렇지 아니한가? 사찰 역시 교회처럼 대형화와 세속화에 빠져 영성은 사라지고 물리적 형체와 사바세계의 욕망만 남은 꼴이다.

   실로 금권 사회이다. 금권 사회를 극복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갈 수 있을까? 아니, 선진국이 되지 않더라도 보다 인간다운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꿈이 아닐까? 1인당 GDP를 운운하기 이전에 청렴지수나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과제의 해결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강한 의지와 복안을 가진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시점에서 ‘안철수 현상’이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은 낡은 정치뿐만 아니라 금권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낡은 질서를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민심의 반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안철수 현상은 상당수 국민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사그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적어도 안 후보가 말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안 후보는 ‘비상식’을 새누리당으로 한정하는 우(愚)를 범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백인 오바마』란 책이 있다. 저자는 「WASHINGTON EXAMINER」지(誌)의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인 티모시 카니(Timothy P. Carney)이다. ‘오바마는 어떻게 거대 기업의 편이 되었나’라는 부제(副題)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거대 기업의 유착관계를 파헤친 책이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역시 거대 기업과 한편이라는 것은 더 이상의 뉴스가 아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민주당도 ‘중산층과 서민의 대변자’임을 내세우나 이것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요컨대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나 똑같은 낡은 체제이다. 노선 등에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금권 정치의 측면에서는 한통속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낡은 체제의 지속일 뿐이다. 그럼에도 안철수 후보는 ‘정권 교체’와 ‘단일화’라는 낡은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더욱이 자잘한 게임 룰을 놓고 벌이고 있는 지루한 단일화 협상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의외로(?) 가치나 비전에 기초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권 교체를 하기 위해서는 두 후보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에는 인식의 공유가 있지만, ‘아름다운 경선’을 할 만한 여건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이유 여하를 떠나 권력욕만 부각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이들이 박근혜 후보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금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일은 어렵게 되었다. 세 후보 모두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고 있지만, 이들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이걸 기대하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금년 대선 이후 새로운 동력, 즉 ‘포스트 안철수 현상’이 일어나리라 믿고 싶다. 혹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참다운 진보 정당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보수 정당의 태동도 불가피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제3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존 케네디(John F. Kennedy)는 “부(富)는 수단이요, 사람들은 목적이다. 우리가 국민에게 폭 넓은 기회를 부여하는 데 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부의 편중이 극심하고 물신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을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는 없다.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이런 방향의 사회운동이 각 분야에서 용솟음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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