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낸 제이콥 니들먼(Jacob Needleman)은 “국가와 개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있어서도 순수한 물질적 위기 같은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증가, 마약, 빈익빈 부익부, 환경 파괴, 인구 폭발 등 현대 세계의 위기는 삶의 해석과 행위에 있어서 철학적․도덕적 지침의 전 세계적인 파탄의 결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치관 혹은 가치체계의 위기라는 취지이다. 니들먼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점을 현실에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2년 전에 나온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철학서에 열광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병들어가는 영혼을 치유할 새로운 진리를 향한 갈구였다. ‘힐링’의 유행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실체를 획일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자본주의의 위기, 산업문명의 위기, 기계론적 세계관의 위기 등으로 표현한다. 그 무엇이든 공통점은 물질적 수준의 상승과 대비되는 정신적 수준의 하락으로 요약될 수 있다. 숱한 이데올로기가 등장했고, 특정 종교들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데도 그렇다. 근본주의나 원리주의가 기승을 부린 까닭이다. 가치관과 가치관의 충돌이다.

주지하듯이 세계 자본주의 혹은 산업사회는 인류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의 눈부신 물질적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국가 간, 지역 간, 계층 간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전반적으로 인류 사회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물질적인 부(富)를 향유하고 있다. 그 결과 환경 위기 혹은 생태계 파괴에 내몰려 있지만 말이다.

환경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 또는 산업문명이 자아낸 인간의 탐욕이다. 환경 위기는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탐욕은 대오각성의 노력 없이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중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거기에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비유컨대, 대다수 국가들은 에리히 프롬(Erich P. Fromm)이 말하는 ‘존재형 인간’이 아니라 ‘소유형 인간’이 넘쳐나는 사회이다. 극단적인 관념이 인류사회를 휩쓸었던 것도 같은 연유이다. 프롬은 특정한 지식을 강요하는 행위도 ‘소유형 인간’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독선과 독단을 정신적 소유욕이라고 달리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 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이 있다. 인도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록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도 국민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라나시의 어느 거지는 “때로는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다. 난 주고 싶어도 줄 게 없다.”라고 말했다. 또 델리의 릭샤 운전사는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라고 했다. 그런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1인당 GDP를 떠나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여기에 훨씬 못 미치고 있으니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성장가도를 달려 왔단 말인가! 정신 수준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지식과 기능은 뛰어난지 몰라도 지혜는 태부족이 아닐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지혜가 넘쳐났고, 미풍양속이 있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인정이 많았다. 하지만 압축적인 근대화 탓인지 점점 냉정하고 메마른 사회로 변해갔다. 물질이 넘쳐나는데도 만족을 모르고, 질(質)의 시대로 진입했는데도 양(量)의 팽창에 치우쳐 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말한 ‘국가가 멸망할 때 나타나는 7가지 징조’를 두루 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정신적 위기에 처한 데는 크게 ① 물신주의 ② 경쟁력지상주의 ③ 이기주의 ④ 속도주의 ⑤ 외형주의 ⑥ 명분주의 ⑦ 기능주의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 모두를 세세히 관찰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가 평소에 느끼고 있는 바이다. 다만, 뼈저린 반성과 패러다임의 대전환 없이는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음양(陰陽)의 조화를 잘 알고 있다. 즉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을 위해 물러나고,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을 위해 물러난다.”이다. 노자(老子)가 말한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도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이 요즘 들어 더욱 더 주목하는 동양사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그 합리적 핵심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양과 음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양은 남성이고 음은 여성이다. 양은 강요이고 음은 수렴이다. 양은 경쟁이고 음은 협동이다. 양은 합리이고 음은 직관이다. 양은 분석이고 음은 종합이다. 그동안 인류사회는 서양이 주로 추구해 온 양이 지배한 시대였다. 그래서 이제는 음의 가치를 더 살리고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서양의 양(陽) 중심의 가치관은 이미 오래 전에 그 한계를 드러냈다. 서양이 자랑해 온 합리성이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극단과 억압과 파괴로 귀결된 것임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도구적 합리성’에서 ‘소통적 합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요컨대 이제 대한민국은 그동안의 성장과 경쟁 등 앞만 보고 질주해 온 역사로부터 벗어나 각 부문이 조화를 이루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이나 복지도 이런 토대 위에서 가능한 법이다. 제도의 설계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국민적인 분위기가 ‘나눔’과 ‘헌신’ 그리고 ‘절제’의 정신으로 충만할 때 행복국가나 복지국가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동안 각자가 갈고 닦은 구상도 내놓고 있다. 크게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보다 작게는 세세한 정책 패키지를 제시하고 있다. 나름대로는 질적인 전환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지만, 자신의 리더십 및 정체성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화두로 던졌다.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 전환이다. 그러나 그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박 후보는 최근 들어 ‘여성 대통령’도 주창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은 앞서 말한 음양의 차원에서 보면 시대에 적합하지만, 얼마나 음의 정신 혹은 조화로운 사고의 소유자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문재인 후보는 ‘정권 교체’와 더불어 ‘시대 교체’를 주창하고 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문 후보가 역대 리더십과는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문 후보가 ‘구시대의 막내’를 자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시대 교체’를 주장하기가 어려워진다. 지나친 편 가르기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안철수 후보는 ‘체제 교체’의 주창자이다. 기존 정치권에 몸담은 바 없다는 점에서는 이런 주장을 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안 후보는 그 스스로 규정한 ‘낡은 체제’와의 동거를 꿈꾸고 있는 상황인데,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 속으로 들어가는 격인지 ‘악화(惡貨)에 의해 쫓겨나는 양화(良貨)’에 불과한 신세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메시아인 양 어떤 총체성의 논리에 따라 세상을 변혁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세 후보 모두 대한민국의 변화를 말하기 이전에 그 스스로의 리더십에 대해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여기서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한 직업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 중에서 ‘균형감각’을 각별히 강조하고 싶다. 역대 대통령의 실패가 지나친 의욕과 아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균형감각’이야말로 다음 대통령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매월당 김시습은 “최선의 정치란, 훌륭한 정치를 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최선의 정치는 순리를 따르는 데서 이루어진다. 무위(無爲)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무위는 마음속에 진실함(誠)을 둔 채 쉼 없이 정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대통령 후보들이 새겨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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