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조재휘 기자ㅣ성악에서 남자 가수의 가장 높은 음역인 테너(Tenor). 수많은 성악가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테너로는 일명 ‘쓰리 테너’라고 불렸던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들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 꼽는 ‘한국의 3대 테너’도 존재한다. 최근 한국의 3대 테너로 꼽힌 신영조 교수가 세상을 떠난 가운데 대중의 귀를 호강시켜 준 ‘한국의 3대 테너’는 누구일까.

첫 번째, 가수 이동원과 ‘향수’ 부른 국민 테너 ‘박인수’

[사진/방송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테너 박인수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줄리아드 음대에서 마리아 칼라스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남미와 유럽에서까지 주역 테너로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20여 년간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며 300회가 넘는 오페라 공연에서 주역의 자리를 지켜왔으며 클래식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소신과 함께 대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가수 이동원과 함께 부른 <향수>로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테너’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것이 생소했던 당시 그는 이 때문에 <향수>를 발표한 뒤인 1991년 국립오페라단 단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2월 28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한국 성악계 거목으로 고음의 미성 테너 ‘신영조’

[사진/촬영 황철환, 연합뉴스 제공]

1943년 9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교 시절 야구부로 활동했다. 장충고 시절, 부상으로 병원 입원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클래식에 빠져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1963년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군에 입대한 2년간 노래를 중단한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6년간 유학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독창 오디션에 합격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1975년 귀국 직후부터 모교 강단에 서 2009년 2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34년간 40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1991∼2006년 국내 최초 성악 부문 단독 음악캠프인 ‘신영조 여름 음악학교'’를 운영했으며 1976∼1995년 국립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해 <진달래꽃>, <내마음>, <초롱꽃>, <기다리는 마음> 등 가곡을 널리 알렸다. 그는 지난 14일 오후 7시쯤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뇌경색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세 번째, 우리나라 가곡 대중화에 기여한 테너 ‘엄정행’

[사진/유튜브 채널 'OBSW' 방송화면 캡처]

성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화상으로 인하여 근육이 펴지지 않아 근육 강화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였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배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하려고 했으나 키가 작아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경희대 성악과 교수로 강단에 서며 34년간 레코드 22종, CD 9장을 냈다. 대표곡으로는 <목련화>, <선구자>, <그리운 금강산> 등이 있으며 주옥같은 우리 가곡을 대중의 반열에 올린 이가 바로 그다. 지난 2009년 경희대 교수를 정년퇴임 한 뒤 고향인 경남 양산에 엄정행 음악연구소를 개원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원조 빅스리(Big3) 테너’로 불리며 1970∼1980년대 한국 가곡 붐을 이끌었다. 비록 3대 테너의 목소리를 모두 라이브로 듣는 것이 이제 어려워졌지만 이들의 뒤를 잇는 제자들이 많이 나왔기에 새로운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를 호강시켜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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