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레브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colayebich Tolstoy)는 “자신의 생각이 만인의 법인 것처럼 강요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결국 만인에게 배척당하고 만다.”라고 설파했다. 또 톨스토이는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분량이 아니라 질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금언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유력한 차기 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또 대한민국 정치사를 통틀어 지지자들로부터 열광적인 성원을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치 지도자 중의 한 명이다. 톱스타가 부럽지 않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단아한 용모와 절제된 언어에서 나오는,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의 매력은 실로 압권이다. 특정 정당에 속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을 듯하다.

그리고 정치 리더십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강점이 두드러진다.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위기관리 능력이다. 새누리당이 절체절명에 빠져 있을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당을 구해냈다. 그래서 ‘여성은 유약하다’는 편견을 깨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적인 매력과 카리스마가 만만치 않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 하면 ‘여성 지도자’임을 연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강점을 지닌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두루 닮았다. 아버지로부터는 강한 리더십을, 어머니로부터는 우아한 외모와 함께 부드러움을 물려받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박 후보의 강온 양면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열하게 벌일 때는 아버지의 면모가 더 강하게 부각되었다. 지금도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이라 그런 모습이 더 많이 연상된다.

필자는 21일 있었던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접하면서 의아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박 후보가 자신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저런 내용의 회견을 할 수는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필자만 이렇게 느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회견을 하지 말든지, 그렇게 하더라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는 방향이어야 했다. 박 후보 자신은 승부수를 던진다는 의도였겠지만,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지난번 과거사 관련 회견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남는다.

‘내재적 비판’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원래 학문세계에서 쓰이는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에 대해 주로 쓰인다. 즉 북한을 비판하더라도 어떤 편견을 갖지 말고 북한의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자는 취지이다. 박근혜 후보에게도 ‘내재적 비판’이란 잣대를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박 후보로부터 발생하는 의문 나는 일들을 박 후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비판을 하되 이런 맥락에서 한번 시도하고자 한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듯이, 박근혜 후보는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운에 잃었다. 참으로 불행한 가족사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잘못을 떠나 이렇게 부모를 여읜 박 후보에게 인간적인 동정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박 후보는 장녀이자 맏이다. 그래서 박 후보는 동생들을 이끌면서 부모님 없는 가정을 지켜야 했다. 더욱이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 사후(死後)에 부정적인 여론이 꿈틀거리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근혜 후보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떠난 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던 셈이다. 그리고 1979년 10·26 이후 청와대를 떠나 보통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997년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에 대해 사람들은 ‘은둔의 시간’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박 후보가 이런저런 사회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제한적이었다는 뜻이다.

이 18년이란 기간은 박근혜 후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아마도 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박 후보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추스르는 일에 많은 할애를 했을 것이다. 사면초가에 처한 가장으로서, 심한 굴곡을 겪은 사람으로서 심신을 단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이다. 그 결과 지금의 내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도 정성을 기울였을 법하다. 실제로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단체의 수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 한나라당에 들어오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위기에 직면해 있던 이회창 후보가 영입하는 형식이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당원은 곧바로 텔레비전 찬조 연설에 투입되었다. 거기서 밝힌 정계 입문의 변(辯)은 “아버지가 일으켜 세운 나라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는 취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빈곤에서 구제했는데, 외환위기라는 유탄을 맞은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이런 박근혜 후보의 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강한 존경심과 남다른 애국심이다. 보통 사람들도 부모에게 애정과 존경심을 보내기 마련이지만, 박 후보는 공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특별난 것 같다. 그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흠모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런 박 후보를 두고 ‘박정희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 후보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비운에 잃었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

박근혜 후보의 남다른 애국심은 “조국과 결혼했다.”는 한 마디의 말에 잘 녹아 있다. 마치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명언을 연상하게 하는 언급이다. 실제로도 애국심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수받았을 수도 있고, 박 후보 자신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터득했을 수도 있다. 애국심은 지도자에게 좋은 덕목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면모에 대해 강한 국가주의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상당수 젊은이들이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박근혜 후보가 그동안의 여러 난관을 뚫고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라는 막중한 자리에 등극하는 데는 부모님의 후광과 박 후보의 애국심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박 후보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과 위기관리 능력 등의 리더십도 도움이 되었다. 또 새누리당을 살려낸 공로 또한 크게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의 후광이 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박 후보로서는 이만저만 곤혹스러운 지경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찬사와 비난을 극단적으로 한 몸에 받는 지도자는 드물 것이다. 지지자들은 나라를 가난에서 건져낸 구국의 지도자라고 칭송하고 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독재자, 더 심하게는 파시스트라는 혹평을 일삼는다. 이런 양면을 모두 갖추고 있을 터이다. 대체로 보릿고개라는 빈곤을 직접 체험한 장·노년 세대는 박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 보는 편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걸 이끌었던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5·16은 정치적으로 쿠데타가 분명하지만, 근대화의 성공과 맞물려 있어 어느 정도 그 불법성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3선(選) 개헌과 10월 유신(維新)은 5·16과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 후보와 가까운 어느 중진 정치인은 중화학공업을 위해 유신이 불가피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반대의 비판이 더 설득력이 있다.

박정희 정권이 끝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박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생존해 있다. 또한 그 가족들의 수난사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더욱이 박정희 리더십이 그 때에는 통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리더십의 시대가 아니다.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전략이 적용될 여지도 별로 없다. 어떤 사람들은 1997년 외환위기의 발생이 박 정권 때에 만연했던 정경유착의 산물로 해석하기도 한다.

박근혜 후보는 본인 스스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의 정신을 본받아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정계 입문을 한 것 같다. 어느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이런 뜻으로 취중진담을 한 적이 있기도 하다. 어떤 경위에서 정계에 들어왔든 박 후보는 지금 유력 대통령 후보 중의 하나이다. 이런 위치에 있는 이상, 이에 맞는 덕목을 발휘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인의 신분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후보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박정희 시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한 관점이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인의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 후보로서는 중대한 결점이다. 또한 박 후보는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형 지도자라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내재적 비판’이란 시각에서 보더라도 박 후보는 개선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제36대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은 “대통령의 가장 어려운 임무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심의 소재를 제대로 읽는 일이다. 또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훌륭한 지도자는 혼자서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 때때로 뒤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했다. ‘나홀로 리더십’이 아니라 ‘다함께 리더십’을 구현하지 못하면 박 후보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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