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소속 안철수 후보(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중), 새누리당 박근혜후보(우)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유명한 책에서 직업 정치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자질을 들고 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 감각이 그것이다. 뛰어난 사회과학자였던 베버이지만, 이 자질론은 그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 감각이 직업 정치가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한다면,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 지도자에게는 더 더욱 그럴 것이다.

막스 베버는 열정을 ‘대의(大義)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라고 풀이했다. 사전에서는 대의를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베버의 의도는 이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의명분’이란 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대의명분은 대의와 동일한 의미도 있지만, ‘어떤 일을 꾀하는 데 내세우는 합당한 구실이나 이유’라는 뜻도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가치와 시대정신이 대표적인 대의명분이라 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또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정치가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것은 헌신과 동시에 이 대의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열정이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 “책임감이 우리의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라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열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책임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책임감을 정치인 중 경세가(statesman)와 정상배(politician)를 가르는 주요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균형 감각에 대해 막스 베버는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책임감이 열정에 대한 보완적 성격을 갖는다면, 균형 감각은 ‘책임감 있는 열정’을 위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자질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세 가지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까? 대단히 미묘한 문제라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강의 윤곽을 그릴 수는 있지 않을까? 더욱이 정책이나 공약이 비슷해 차별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자질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참모진과 소속 정당의 자질도 함께 비교하면 우열을 좀 더 정확하게 가릴 수 있을 것이다.

세 후보는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갖고 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각각 보수 진영과 중도·진보 진영을 대표한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 자신의 가치관이나 국가 경영 철학이 다소나마 있었기 때문에 제1당과 제2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대표할 만한 진영은 없지만, 기존 정당 체제를 불신하는 유권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한 지도자이다.

이들의 대의명분에는 능동적인(positive) 측면도 있지만, 수동적인(negavive) 측면이 더 강한 편이다. 박근혜 후보는 ‘국가 안보를 무시하고 과거사에 매달리는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는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해야 하고, 독재자의 딸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신념이 내면화되어 있다. 또 안철수 후보는 기존 정당 체제를 ‘낡은 체제’라 규정한 바 있다. 소속 진영과 정당 그리고 지지자들은 더 그렇다.

다 같은 네거티브 성격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안철수 후보의 대의명분이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개인적 자질을 떠나 소속 정당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식정보 시대라는 트렌드 면에서도 안 후보가 더 유리하다. 안 후보는 ‘지식정보 시대의 아이콘’처럼 인식되고 있고,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시대정신에 근접해 있는 정치 지도자로 서 있다.

다만, 대의명분에 대한 열정의 강도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조국과 결혼을 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남다른 애국심을 갖고 있다. 신념이 매우 강한 것이다. 하지만 집권 여당 후보로서 공격수보다는 수비수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불리한 점이다. 지지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매력은 있지만, 자신만의 브랜드가 다소 약한 편이다. 또 국가주의를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가 미래 세대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소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정치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자신의 책 제목처럼 ‘운명’과의 조우이다. 문 후보가 짧은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 때문이다. 문 후보는 정권 교체의 당위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만, 권력의지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친노(親盧) 그룹 및 민주당의 생각과는 달리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후보 자리를 양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안철수 후보는 오래 전부터 신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정치권의 러브 콜을 받았지만, 작년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급조되면서 본인의 생각과 무관하게 유력 대선 후보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권력의지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정치 혁신이라는 뚜렷한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준비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릴 수 있다. 지지자들의 열정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책임감이라는 측면은 어떨까? 대통령 후보의 책임감은 여느 정치가의 책임감과 같을 수가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갈수록 볼품이 없을지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는 막중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가 경영에 대한 책임감은 마음을 먹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합당한 리더십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눈, 이해 다툼에 대한 조정력,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능력 따위이다.

박근혜 후보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계에 입문하면서 “아버지가 일으켜 세운 나라가 이대로 무너지는 현실을 볼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그만큼 애국심과 소명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책임감 또한 남다를 것 같다. 그리고 여러 난관을 뛰어넘어 제1당의 대통령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경험과 학습을 통한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따른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부 때 4년 가까이 전반적인 국정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겸손하고 합리적인 품격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준비 부족 때문인지는 몰라도 메시지의 파괴력이 약하다. 그래서 아직은 ‘대통령 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지 못하고 있다. 선출직으로는 국회의원 초선에 불과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노 전 대통령과는 많이 다른 특성들이다.

안철수 후보는 오랜 기업 경영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현장 감각을 갖고 있다. 이것이 국가 경영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의 폭넓은 독서도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아무리 통찰력이 뛰어나더라도 정치적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수시로 닥치는 국가적 난제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안 후보는 함께 할 정당도 없고, 정치적 동반자도 부족하다.

앞서 소개했듯이 막스 베버는 균형 감각을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주관적 열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객관적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어쩌면 세 가지 자질 요건 중에서 균형 감각이 지도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덕목이 아닐까! 더욱이 정파를 초월하여 국정을 통할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균형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절제된 언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와 품격이 있다. 이런 내공으로 봐서는 균형 감각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방향 전환을 하고 있지만, 한때 강한 시장주의자였다는 것은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 또한 균형 감각의 부족을 떠올리게 한다. 보수 진영 일각의 극우주의 성향도 박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합리적이라는 것은 곧 균형 감각이 있다는 말이다. 국정 운영의 경험 또한 균형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을 법하다. 하지만 민주당을 포함한 중도·진보 진영의 균형 감각은 문제가 많다. 이 진영 일각에는 대중영합주의, 국정에 대한 책임감의 빈곤과 함께 지난 시절의 이념적 편향성이 남아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해 종속적이거나 관용적인 태도와 강한 민족주의 성향도 균형 감각의 잣대에서 보면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폭넓은 독서가이기 때문에 균형 감각을 잘 갖추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업 경영, 젊은이들과의 소통은 균형 감각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도라는 포지션 또한 균형 감각에 유리하다. 다만, 국정 운영에 있어 균형 감각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아무리 안 후보의 통찰력이 뛰어나더라도 국정과 현실 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시행착오의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위와 같이 세 후보의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에 대해 살펴보았다. 필자의 단견과 공간의 한계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부합한다고 자위한다. 앞으로 캠페인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이런 자질을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이런 각도에서 후보자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막스 베버는 “권력 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때부터 직업 정치가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된다.”라고 갈파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깨달아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역대 정권들의 실패가 권력의 사유화에서 비롯되었음을 명심하고 무엇보다도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국가 경영 준비를 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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