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한 싱가포르를 부강한 나라로 만든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손꼽는 경제부국으로 만들었으며, 부정부패가 없고 깨끗한 사회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는데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출처/YTN)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지도력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 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하게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다.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 행복지수는 경제적인 부에도 불구하고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으나 여타 다른 동남아의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는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하기도 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통치는 국가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현재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가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으며,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대체로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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