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준플레이오프 롯데와 두산 4차전 경기

 

프로야구 포스트시즌과 금년 대통령 선거

 

중국 고대의 손무(孫武)가 지은 그 유명한『손자병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번 승전을 거둔 방법은 되풀이되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 응전하는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지휘관의 임기응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전쟁을 하면서 과거의 경험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지난 8일 시작되었다. 어제(12일) 끝난 롯데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경기는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롯데가 3승 1패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비록 3승 1패라는 결과였지만, 매 경기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특히 마지막 경기인 4차전이 그랬다. 2승을 먼저 거두고 1승을 뺏긴 롯데로서는 ‘2연승 후 3연패’라는 2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8회 초까지 0대 3의 열세. 누가 보더라도 두산의 승리가 점쳐졌다. 만일 이 경기에서 두산이 이겼더라면 마지막 경기인 5차전 승부의 추(錐)는 두산으로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8회 말 동점에 이어 10회 말 두산의 끝내기 에러로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 사진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좌),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중),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우)

 

야구 경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것이 선거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도 다양한 전략·전술을 둘러싼 지략 싸움이 만만치 않다. 막판 변수들이 있어 승리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금년 대통령 선거는 그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것도 세 후보 중 누가 당선될지를 모를 정도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대선이기 때문에 막판까지 유권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것이다. 그런데 금년 대통령 선거는 아직 열기를 느끼기가 어렵다. 아마도 선거 내내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네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후보들의 ‘스토리’가 약하다. 5,60년 이상 살아온 세 후보에게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없을 수는 없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문재인 후보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다 학생운동 때문에 사법연수원을 2등으로 수료하고서도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한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에게는 삶의 굴곡이 거의 없었지만, 늘 도전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의 가족사는 공적인 성격이 짙고, 너무나 많이 알려진 얘기라서 새삼스러운 것이 없다. 문재인 후보 역시 ‘가슴 진한’ 스토리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안철수 후보는 엘리트 출신의 ‘성공 스토리’밖에 없다. 요컨대 과거에 힘겹게 살았거나 내일에의 희망을 갖지 못한 수많은 서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그런 스토리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파괴력 있는 강한 메시지’의 부재이다. 아직 선거전이 본격화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후보들의 메시지는 밋밋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세 후보 모두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캠프의 역량 한계 때문인지 그저 그런 말들뿐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메시지는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소화가 잘 안 되어서인지 전달력이 약하다. 참모들이 적어 준 내용을 읽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두 후보 모두 국가 경영에 직, 간접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도 ‘벼락치기 과외 공부’를 연상시키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전달하는 편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메시지의 파괴력이 약하다.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안고 출마를 했지만, 유권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이다.

셋째, 후보들의 ‘모범생’(?) 성격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세 후보는 모두 ‘착한’ 스타일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달리 ‘권력 의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박근혜 후보 역시 ‘튀는’ 스타일이 아니다. 세 후보 모두 점잖은 모범생인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는 웅변술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같은 순발력과 쇼맨십도 보이지 않는다.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작은 실수’도 별로 없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지지자들조차도 열정을 갖고 캠페인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박수를 치고 싶어도 박수를 칠 수 없는 어색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캠페인 기법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넷째,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대감의 하락 경향이다. ‘성공한 대통령’을 거의 만나지 못해 ‘대통령을 잘 뽑아 나라가 발전되거나 나의 삶이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 또 대통령 한 사람이 나라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도 갈수록 적어질 수밖에 없다. 제도상의 권한과 책임은 막중한지 몰라도, 실제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나름 알아채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의 어려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코가 석자’인 것이다. 미디어 선거란 요즘 대선의 특성도 열기를 감소시킨다. 과거 100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는 여의도공원의 집회 같은 걸 구경하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이 다소 흥미를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당초의 예상과 달리 싱겁게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철수 후보의 파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세 대결의 양상이 될 공산이 큰 것이다. 세 대결로 치달으면 당연히 문재인 후보가 유리하다. 설령 국민 여론조사만으로 결정하더라도 그렇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잘 말해주고 있다. 금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위력을 과시한 ‘노사모’라는 충성심과 응집력이 강한 조직이 안철수 후보의 인기를 ‘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특출 난 매력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불안감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의 언급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요컨대 안철수 후보 본인 스스로 쓰나미와 같은 태풍 수준의 물결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양당 구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후보 단일화 이전에 종전의 ‘깜짝 스타’들처럼 도중하차할 가능성도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뛰어난 연설가로도 유명한 위스턴 처칠(Winston L. S. Churchill)은 “청중을 감정으로 설득하려면, 그래서 통찰력을 제공하려면 연사 자신이 자기 감정에 스스로 동요되어야 한다. 청중의 의분을 불러일으킬 때 그의 가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하고, 청중이 눈물을 흘리게 하려면 그 자신이 먼저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스스로의 삶의 체험과 각성에 바탕을 둔 메시지, 그래서 국민 대중들이 감동하고 함께 박수를 칠 만한 메시지, 나아가 보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메시지가 널리 울러 퍼질 수는 없을까? 이것은 필자의 지나친 기대인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과는 달리 재미는 없고 실망만 안게 되는 금년 대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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