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이윤아Pro] 지난 8일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96세를 일기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그녀는 재위 기간 70년으로 영국 최장 집권 군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이었으며 여왕으로서는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위했다.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과연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이자 선왕인 조지 6세가 사망함에 따라 25세의 젊은 나이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빅토리아 여왕 이후로 최초로 맞이하는 여왕에 영국 국민들은 대체로 환호하는 반응을 보였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1953년 6월 2일 TV를 통해 전 세계에서 2,5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웅장하게 거행되어 여왕으로 정식 즉위하게 되었다. 

영국 여왕은 영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까지 15개국의 군주이자 53개국이 참여한 영연방(Commonwealth)의 수장이고 신앙의 수호자이자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 통치자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영국 총리 15명을 거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격동기에 영국민을 통합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개인적 감정은 뒤로하는 모습으로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영연방을 결속해서 영국이 대영제국 이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했고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나고 유엔 연설을 하는 등 외교 무대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여왕은 왕실이 존립하려면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실천했으며 변함없이 근면성실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믿음을 산 데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1957년 TV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시작하고 유튜브와 SNS도 일찍 도입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백발인 여왕이 개회식 영상에서 ‘본드걸’로 출연했고 영국이 큰 위기에 봉착했던 코로나19 때는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친화력을 잃지 않으며 국민의 마음을 얻은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군주제는 존립의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후손들의 말썽으로 여왕은 골치를 많이 앓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이혼은 세계가 떠들썩한 이슈였고 이후 다이애나비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여왕은 입장을 늦게 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리 왕자가 왕실 밖으로 뛰어나가서는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전하’라는 호칭까지 박탈당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가원수 중 가장 많은 나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 총리 임명과 같은 공식 일정을 소화해내며 여왕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다 지난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든 가운데 장례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8일 국장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까지 서거 이후 열흘간 이어진다. 

서거 닷새 후인 13일부터는 닷새간 여왕의 유해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하루 23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되어 일반인에게도 경의를 표할 기회가 주어진다. 고령의 나이에도 날카로운 판단력과 유머를 잃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식에 들며 현대사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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