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아주 작은 골목 식당이나 동네 카페까지 무인단말기(키오스크)가 설치되어있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대면 주문을 받지 않는 가게도 있다. 우리 앞에 도래한 현실에 순응하며 군말 없이 키오스크를 이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전자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이나 고령자는 자연히 사회의 흐름에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 및 정보 소외계층에게 그리 친절하지는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곳에서부터 노력하는 이들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노력하는 이들’ 중에는 마을미디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마을미디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으며 장애인들의 정보 소외 격차를 줄이기 위한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노원FM의 ‘노원구 소식지 낭독 프로그램’이다.

노원FM 소식지 낭독 프로그램 구성원 (좌측부터 황명희, 이태경, 우귀옥 활동가)

▮일상에서 발견하다

노원FM의 ‘노원구 소식지 낭독 프로그램’은 노원구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원구청에서 발행하는 월간소식지를 낭독하여 음성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본 콘텐츠를 노원FM 팟빵 채널에 올리는 동시에 서울점자도서관에 제공하여 시각장애인들이 관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혜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구정 소식지라면 구민 누구나 알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이 당연한 권리마저 누리지 못했다는 것일까. 이 활동은 신유정 활동가가 2019년 노원구 주민참여예산 사업제안 투표장에서 만난 한 명의 시각장애인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각장애인)분이 내용을 잘 모르니 어디에 투표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노원구 소식지에 다 나온 내용이라고 알려드리니 본인은 소식지를 읽을 수가 없다고 하셨죠. 아차싶더라구요.” 이것을 계기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식지 낭독을 계획하고 있던 신유정 활동가는 우귀옥 활동가의 협력으로 활동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평소 우귀옥 활동가와 친분이 있던 인근 복지관 사무국장으로부터 정기적인 소식지 낭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받은 것이다. 신유정 활동가와 만난 한 시각장애인의 요구는 우귀옥 활동가의 네트워크, 복지관과의 연계가 합쳐져 ‘소식지 낭독 프로그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렇게 시작한 소식지 낭독의 결과물은 서울점자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운영하는 재활통신망에 올라간다. (※일반 이용자는 접근 제한)

‘소식지 낭독 활동’은 현재 우귀옥 활동가를 포함, 황명희, 이태경, 김명진 활동가 이렇게 4명의 노원FM 구성원이 함께 참여한다. 일반적인 읽기가 아닌 전문적인 낭독은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 목소리의 안정감, 낭독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노원FM과 함께 협력하는 노원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낭독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이 개별적으로 외부의 전문 아나운싱 교육까지 찾아갈 만큼 온 마음과 열정을 다했다. 4인 4색의 소식지 낭독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총 16쪽으로 구성되어있는 노원구 소식지를 4명이 4쪽씩 분배하여 낭독을 담당한다. 각자 배정된 분량에 맞춰 녹음한 파일을 보내면 최종 합본 및 편집은 우귀옥 활동가가 담당한다. “소식지 낭독 쉽지 않아요. 다른 라디오 방송은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라도 있는데 낭독은 쉬지 않고 일정한 톤으로 읽어야 해서 힘들죠. 소식지에는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인포그래픽 등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런 것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애매한 부분도 있구요. 그래도 정보를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없어서 최대한 읽어드리죠.” (황명희 활동가)

말투나 음색 역시 4명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약간의 후반 음성 보정이 필요하다. 다만 듣는 이의 재미를 더해주기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맞추기보다는 낭독자 개개인의 개성을 남겨놓는다. 또한 낭독 교육에 따르면 2초가 넘어가는 침묵은 방송 사고로 판단되기 때문에 2초 이상의 침묵 부분을 편집해야 하며,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듣는 이가 알 수 있도록 알림음을 추가해야 한다. 녹음부터 기본적인 음성 조율과 편집, 합본 작업까지 진행되면 비로소 소식지 낭독의 편집이 끝난다. 편집이 완료된 음성파일은 점자도서관 측으로 발송한다. 노원FM은 이런 작업을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매달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임팩트를 확장하다

낭독 프로그램을 주요하게 관리하는 우귀옥 활동가는 이미 낭독이 끝난 지난 소식지까지 빽빽하게 묶어 보관하고 있었다. 그가 꺼내온 소식지 묶음을 펼쳐보니 이전에 발행된 소식지와 근래 발행된 것의 글자 크기가 서로 달랐다. 노원FM 낭독 활동가들은 소식지 낭독 뿐만 아니라 낭독하면서 느낀 불편함과 수정사항 등을 구청에 전달하기도 했다. 덕분에 과거보다 소식지의 글자 크기가 커지고 자간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틈틈이 발견하는 오탈자를 건의하여 내용 검수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들이 보관하고 있는 소식지에는 사람과 지역에 대한 애정이 빼곡하게 메모된 흔적이 가득했다. 바로 여기에 ‘소식지 낭독’의 작지만 큰 역사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후의 낭독 프로그램은 어떻게 펼쳐질까. 우귀옥 활동가는 노원구 소식지 낭독을 넘어 시각장애인에게 더욱 다양한 소식을 제공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앞으로는 한 발짝 더 나가서 시 소식지로 낭독을 확장하면 좋겠어요. 시 소식지는 내용이 더 방대하니 이슈가 되는 현안이나 새소식을 더 많이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이들은 이번 소식지 낭독을 시작으로, 이후에는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자 계획하고 있다. 복지사, 장애인, 자원봉사자 등 현장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가 가까워지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많은 분들이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아니거든요. 비장애인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한 번만 들어보면 깨달을 수 있는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보이는 라디오로 제작하기 위해 기획하고 있어요. 이 활동은 노원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기술 교육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할 생각이에요.” (신유정 활동가)

노원FM은 지난 2012년부터 매년 팟캐스트 교실을 진행하면서 복지관, 도서관, 미디어센터 등의 지역 기관들과 연계해 어린이, 장애인, 어르신 등 다양한 마을 주민들과 공개방송을 진행해왔다. 해마다 교육을 마치면 교육 참여자들이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을 시작하는데 교육 참여자가 직접 방송을 만드는 제작자가 되고 활동가가 되는 선순환적 구조가 유지되는 것이 노원FM의 강점이다. 노원FM 소식지 낭독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황명희 활동가는 노원FM에서 직접 진행하는 ‘드림 카페’ 방송을 178회까지 제작했다. 매주 1회씩, 4년이 넘는 시간을 마을미디어와 함께 이어온 것이다. 신유정 활동가는 이에 대해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니라 전부 다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노력하면서 그게 모여서 10년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노원FM이 가진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 마을 구성원 모두 평등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공동체성이 잘 드러난 활동이 바로 ‘노원구 소식지 낭독’일 것이다. 점차 심해지는 개인주의와  파편화되는 도시에서 지역 공동체성을 잃지 않고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며 장애, 비장애를 떠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마을을 꿈꾸는 마을미디어 노원FM의 작은 노력, 그것이 지니는 임팩트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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