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박근혜 후보의 극복 과제

 


미국 보스턴 필하모닉의 지휘자를 지낸 벤 젠더(Ben Zander)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 자신은 정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얼마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소리를 잘 내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 능력을 평가받을 뿐이다. 이렇게 다른 이들 속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깨워서 꽃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리더십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리더십 담론에서 많이 인용하는 명언이다.

어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선대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눈길을 끈 것은 ‘대통합위원회 위원들’이었다. 박정희 정권을 포함한 군사 정권 때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었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전에 있었던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의 인사(人事)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통합’이라는 이름에 맞는 인선(人選)을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다만, 민생과 관련된 사람들이 적은 것이 ‘구슬의 티’이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망라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결과이다.

이로써 박근혜 후보 진영은 대선 대장정을 향하여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선 후보 경선 규정 논란과 과거사에 대한 입장 표명 등에 있어 오류를 범한 것은 올바른 진언을 하지 못한 참모들의 잘못에서도 기인하지만, 박근혜 후보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 참모들을 기용한 것도, 쓴 소리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던 것도 박근혜 후보의 탓이다.

요컨대 선대위원회를 통합형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종전의 행태가 시정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박근혜 후보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리더십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수직적 리더십이다.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정권 때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서인지 ‘권위주의형’ 리더십이라는 비판에 자주 직면한다. 심지어 유력 국회의원들조차 직접 통화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핵심 측근 국회의원들 중 관계가 틀어진 것도 그의 수직적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다. 폐쇄적 리더십도 마찬가지이다. 몇몇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적을 종종 받곤 한다. 요즘 들어 ‘15년 동안 같이 일해 온 몇몇 보좌진이 최고 실세’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리더십이 국민 대중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자명한 일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을 좋아할 리 없다.

정치력의 부족 또한 넘어서야 할 과제이다. 비주류 후보들의 대선 후보 경선 규정 개정 요구에 대하여 ‘원칙론’으로 응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일이다. 헌법도 고칠 수 있는 마당에 ‘경선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자세는 오기(傲氣)에 다름 아니다. 5년 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였겠지만, 5년 전과 달리 금년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자신의 당선이 100퍼센트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참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당 밖의 인사들을 영입하면서도 당내 유력 정치인인 이재오 의원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과의 소통 부족도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정치력의 부족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발로 뛰는 국회의원들이 별로 없다’는 소리들이 나오는 것도 정치력 부족의 한 단면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박근혜 후보의 가치이다. 박정희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잘못되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경영 철학과 시대정신에 대한 의식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로서 그동안 이런저런 정책들을 발표했지만, 그 바탕에 깔린 가치에 대해서는 소상히 밝힌 적이 없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은 5년 전과는 많이 다른 정책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5년 전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줄·푸·세’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주의를 세운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전형적인 시장자유주의 노선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노선의 대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를 의식한 전술적인 변화인지, 아니면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적당한 기회에 자세히 밝히는 것이 도리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박근혜 후보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다른 후보와는 무엇으로 차별화를 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는 진보 후보들이 내세우는 전형적인 의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 의제라고 해서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주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 자체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슈의 상쇄라는 측면에서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와 ‘경제 민주화’가 자신만이 내세울 수 있는 대표 공약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하면서도 국민의 요구와 시대정신에 맞는 대표 공약이 무엇일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콘덴츠와 메시지’에 대한 의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쓴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메모를 열심히 하는 자세는 비난받기보다는 본받을 만한 일이다. 다만, 어떤 주제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 콘덴츠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후보 자신이 만만치 않은 내공과 콘덴츠를 갖고 있음을 입증하는 길밖에는 없다. ‘메시지가 빈곤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청량한 목소리와 단아한 외모에 비해 메시지가 감동적이고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들이 있다. 이것은 참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박근혜 후보에게도 당연히 내세울 만한 남다른 능력과 매력이 있다. 국가 지도자의 주요 덕목 중의 하나인 ‘위기 관리 능력’은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카리스마 역시 여느 지도자 못지않다. 또한 환갑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와 품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이 시간 박근혜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당 안팎의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박근혜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은 후보의 몫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캠페인을 몇몇 측근들과 함께 관료 조직 운영하듯이 해 오고 있다. 열정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킬 만한 분위기가 전혀 아닌 것이다. 이 점이 다른 후보 진영에 비해 현격한 열세이다. 이것은 이번 대선 승패를 좌우할 요인이 될 수도 있다.

17세기 일본의 무사(武士)였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는 “스스로 무적(無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쓰러뜨리기 쉬운 적은 없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지난 5년 동안 ‘대세론’에 안주해 왔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과거사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선대위를 재구성하는 등의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대선일은 두 달 가까이 남았다.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하루 아침에 대선 판도가 뒤바뀌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두 달은 긴 시간일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패배 직후에 있었던 은퇴 기자회견에서 “진작 젊은 참모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대세론에 빠진 나머지 자신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한 노회한 국회의원들의 말만 믿고 선거를 그르쳤다는 때늦은 한탄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순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런 실패 사례를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반복할지는 그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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