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좌)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우)

후보 단일화의 빛과 그림자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개인들 사이에서는 법률이나 계약서나 협정이 신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오직 힘에 의해서만 신의가 지켜진다.”고 말했다. 모든 권력관계를 약육강식의 법칙으로만 재단(裁斷)할 수는 없겠지만, 마키아벨리의 금언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곧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충분히 상기할 수 있다.


이번 대선의 최대 관심사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후보 모두 단일화에 대한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단일화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경선 때부터 ‘공동정부론’을 언급한 것이나, 안철수 후보가 최근 들어 ‘대통령-총리 역할분담론’을 설파한 것 모두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는 우리나라 대선 역사에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987년에는YS-DJ 후보, 1997년에는 DJ-JP 후보, 2002년에는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시도되었다. 잘 알다시피 YS-DJ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다수 국민의 염원이던 군정 종식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DJ-JP의 단일화는 성사되었다. 그 힘으로 DJ는 일생일대의 소원이던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JP는 두 번째 국무총리를 지낼 수 있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는 여론조사로 결정되었으나, 선거일 전날 파기되었다. 하지만 단일화 효과를 누린 결과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반대 진영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를 혹평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현행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는 이상,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정당의 주요 존재이유가 정권을 잡는 데 있다고 할 때, 후보 단일화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려고 하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중심제인 대한민국에서 후보 단일화를 보편타당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가치와 정책 노선의 공유 없이 자리 나눠먹기에 초점이 맞춰진 단일화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YS-DJ 후보의 단일화는 같은 정당 출신이고 민주화 운동을 함께 이끌었으며, 군정 종식이라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두 지도자의 권력욕 때문에 단일화는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군부 출신인 노태우 후보가 36.6퍼센트라는 저조한 득표율로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에 DJ-JP 후보와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가치와 정책 노선이 대단히 이질적인 세력 간의 연합이었다.


DJ-JP 후보의 단일화는 JP가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대신에 DJ에게 ‘내각제 개헌’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성사될 수 있었다. DJ는 당초부터 내각제 개헌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는데,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고 보자는 생각 때문에 ‘내각제 개헌’이 대표 공약으로 발표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지도자 간의 ‘내각제 개헌 약속’은 김대중 정부 도중에 파기되었다. 그로써 ‘DJP 공동정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DJ와 JP의 후보 단일화는 ‘내각제 개헌’ 외에도 ‘지역등권론’이라는 미명 아래 ‘충청-호남 연합’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지역등권론은 ‘경상도 정권의 지배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지역이 뭉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겉으로는 그럴 듯했지만,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해괴한 용법이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도 태어나서는 안 될 조합이었다. 두 후보의 지지층은 어느 정도 겹치는 측면이 있었지만, 두 후보의 성장 배경, 정치적 지향점은 너무나 상반되었다. 심지어 노무현 후보는 1988년 5공 청문회 때 정몽준 후보의 부친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심하게 다그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오로지 이회창 후보에 이기기 위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연합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 후보 단일화는 깨지고 말았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왜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 국가 경영에 관한 철학이나 정책 노선의 무엇이 서로 닮은 것인지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진보적인 시민사회 일각에서 추진해 온 ‘반(反) 이명박’ 혹은 ‘반(反)새누리당 연합’의 성격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앞서 본 DJ-JP 후보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완성된다면 정권을 만드는 데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국정 운영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이미지와 그들이 표방하는 내용이 비슷한 면도 있다. 권위주의의 타파, 동반 성장이 그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 진영에는 노무현 정부의 참모와 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성장 배경과 정치관이 서로 많이 다르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 자체가 민주당을 포함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민심 이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철수 후보 스스로 민주당을 포함하는 기존 정치권을 ‘낡은 체제’라고 규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겠으며, 설령 그것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안철수 후보가 주창해 온 ‘새로운 정치’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안철수 후보는 자신이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하더라도 민주당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당이 안철수 후보의 추동력으로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민주당에 낡은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이 땅의 정치 풍토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출마 기자 회견에서 후보 단일화의 전제 조건으로 밝힌 ‘민주당의 쇄신’이 최소한 이번 대선 전에는 가시화될 수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낡은 정치라는 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차별성이 별로 없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정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정경유착, 권모술수, 당리당략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우리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최선’이나 ‘차선’이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을 강요받아 왔다. 그런데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임계점(臨界點)에서 안철수 후보가 등장했다. 안철수 후보에게도 여러 한계가 있겠지만, 유권자들이 정치 개혁의 적임자로 보는 이유는 그가 기존 정치권에 몸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더라도 안철수 후보의 출마는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우리나라의 낡은 정치 풍토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안철수 후보의 출마 자체가 기존 정치권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안철수 후보가 당선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고자 한다면 거기에 적합한 인재들을 두루 영입해서 파트너십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 노력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결국 민주당이라는 기성 정치권에 투항하는 유혹을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무소속 대통령의 위험성’에 대하여 수차례 강조해 왔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 역시 단일화를 하더라도 민주당 소속인 자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민주당의 대표와 후보로서 응당 할 수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로 그칠 수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후보 단일화를 한다면, 안철수 후보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민주당의 당력이 안철수 후보의 개인기를 충분히 누를 수 있다는 말이다. 후보 단일화에 응하는 이상, 아마도 안철수 후보가 경선에서 패배하거나 도중하차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들과 같은 식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번 대선은 ‘낡은 정치의 청산’이냐 아니면 ‘낡은 정치의 지속’이냐의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유권자들이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온고지신(溫故知新) 노력을 어떻게 평가할지, 그리고 안철수 후보의 독자적인 환골탈태(換骨奪胎) 노선은 성공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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