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위),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한 박선숙, 송호창, 김성식 (아래 왼쪽부터 차례로)

 

모호한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기 개혁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송호창 의원(경기 의왕·과천)이 어제 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민주당에 입당한 지 8개월,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6개월 만의 탈당이었다. 소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당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송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 세력에게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변명했다. 그 자신은 부인했지만, ‘낡은 정치 세력’은 당연히 민주당을 지칭한다. 안철수 후보가 평소에 민주당을 포함한 기성 정치권을 ‘낡은 체제’라고 규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송호창 의원의 선택은 그의 자유이지만, 이런 행위는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이 낡은 정치 세력이라면, 왜 입당을 했으며 그 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는지 의아스럽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의도하고 민주당에 들어갔다면 참으로 부도덕하다. 처음에는 민주당에 기대를 갖고 입당을 했는데, 그동안 민주당의 어떤 낡은 요소 때문에 탈당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밝혔어야 했다.

시점도 적절하지 못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에 단일화를 하든 안 하든, 두 후보는 엄연히 말해 경쟁 관계이다. 세 대결을 한창 벌이고 있는 와중에 적진에 투항한 것이다. 송호창 의원이 민주당을 낡은 정치 세력이라고 매도하면서 탈당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금년 12월 대선까지 지켜보아야 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치 도의이다. 이와 같은 무원칙한 탈당 자체가 ‘낡은 정치’에 다름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송호창 의원 외에도 박선숙 전 의원과 김성식 전 의원을 영입한 바 있다. 박선숙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는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제18대 국회 때는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다. 금년 총선 때는 민주당의 사무총장이기도 했다. 김성식 전 의원은 지난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그 전까지는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선대본부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다.

단기필마인 안철수 후보가 본격적인 대선 경쟁을 위해서는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을 영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입된 정치인들은 기존 정치권 안에서 상대적으로 청렴하고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안철수 식 정치’가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그려져야 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그런 그림에 상당히 맞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기존 정치권을 ‘낡은 체제’라고만 규정했을 뿐이지, 안철수 후보가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하여 뚜렷하게 밝힌 적이 없다.

현존 정치권을 ‘낡은 정치’라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낡은 정치에는 낡은 정치 주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풍토나 토대가 낡은 정치를 유지시키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정치 혁신을 추동할 새로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반에 대한 정교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안철수 후보와 손을 잡는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 주체라 할 만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큰 틀에서의 조합 없이 다른 정당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새로운 정치라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대선을 앞두고 늘 벌어지는 기성 정치권의 세력 다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력 대선 주자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정치 혁신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또한 안철수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기존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에는 지나치게 낡았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이 불가피한데, 안철수 후보가 그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은 급작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치 패러다임을 바꿀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든 안 하든 안철수 후보의 출마 자체가 기존 정치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로서의 기능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정치의 표방에 상응하는 행태를 입증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만일 안철수 후보의 정치 실험이 실패로 끝난다면, 새로운 정치 주체의 등장은 상당히 지체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James MacGregor Burns)는 “지도자는 권력을 거래하는 상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드는 원칙과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야말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안철수 후보는 과연 어떤 원칙과 가치 속에서 대선에 출마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원칙과 가치를 갖고 새로운 정치 주체를 만들려는 것인지를 좀 더 분명하게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흔히 ‘이데올로기는 끝났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거대담론보다는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세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 역사를 지배했던 낡은 이념에 얽매일 수는 없지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등불의 성격을 갖는 가치는 필요할 뿐만 유익한 것이다.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가장 큰 책무라면, 그 비전과 희망을 담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우리는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새로운 정치를 주창하기 위해서는, 그 행태도 신선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가치가 새로운 것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존 정치권이 낡았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담기에는 그들이 가진 기득권이 여전히 크고 고정관념의 잔재가 뚜렷하다는 의미이다.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좌초하고 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 진영은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 누려야 할 기득권이 없고, 근거할 만한 고정관념이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공유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다면 새로운 가치가 스며들 여지가 없고, 새로운 가치가 없다면 안철수 후보 진영이 무엇으로 기존 정당과 차별화하고, 국가 경영을 선도할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안철수 후보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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