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임하은 수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각국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침공이 일어나기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를 ‘핀란드화’하는 것이 긴장 해소 방안 중 하나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해 냉전 시대 용어 ‘핀란드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핀란드화’는 서방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가 소련의 대외정책을 추종한 사례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 용어는 1960년대 친서방 정책을 주장하는 서독의 학자, 언론, 정치인들이 만든 용어로 당시 핀란드의 친소련 행보를 비판하려고 만들어졌다.

핀란드에서는 강대국의 도움 없이 홀로 소련과 맞서야 했던 핀란드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 표현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이들은 작은 국가가 옆에 있는 문화와 사상이 다른 초강대국과 협상을 하면서, 주권을 유지하는 행위가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엄격한 중립을 표방한 핀란드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소련의 침략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과 외교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핀란드화는 더는 사용되지 않는 구시대적 용어가 됐고 더 나아가 핀란드를 모욕하는 용어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서 핀란드화 언급은 금기시되어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핀란드화를 해결책으로 꺼내는 것이 비판받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근대 시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 혁명과 핀란드 내전을 거쳐 독립할 수 있었다. 소련은 핀란드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구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죄다 되찾으려는 스탈린은 핀란드 정복 의욕을 대놓고 드러냈다. 이에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이 일어났고, 핀란드는 독소전쟁을 치르던 나치 독일의 협력까지 얻었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소련에 영토 일부를 넘겨줘야 했다.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핀란드인들은 대부분 반소 감정을 드러내며 소련에 맞서 싸웠고, 주요 전투 여럿에서 이기는 등 국력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핀란드는 다시 소련과의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소련의 국익을 거스르지 않는 암묵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핀란드는 친소련 정책을 실시하면서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한 해법으로 제시되지만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표현인 ‘핀란드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의 국내외 정책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 행사를 서방이 용인하는 것으로 비치는 만큼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방안은 우크라이나의 반발로 하루 만에 취소됐지만 언제든 이와 유사한 제안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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