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어김없이 대선 시즌이 되면 단일화 소식이 나온다. 보통 지지율이 양분되어 있는 두 후보가 지지율이 높은 후보로 통일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부호의 단일화가 좌초된 가운데 대한민국 대선에서 단일화가 이루어졌던 역대 사례를 한 번 알아보자. 

첫 번째,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김종필’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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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 간의 대선 후보 단일화로 DJP 연합이 출범하면서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끌었다. DJP연합은 단순한 정치적 연합이 아닌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었던 김대중-김종필의 연합이었기에 많은 이론적 연구가 수반되었다. 따로 나와서 경쟁을 했을 때는 당시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DJP연합이 이루어졌다.

당시 김대중은 1,032만표를 얻으며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대중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계속 낙선을 거듭해왔다. 그러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종필과 DJP 연합을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으며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제6공화국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두 번째,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노무현-정몽준’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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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후보 간의 단일화가 이뤄져 이회창의 절대우위 구도를 뒤집고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다. 단일화 협의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방식 등 쟁점 사항에 있어 통 큰 양보를 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선 재수생인 이회창 후보는 경험이나 세력 면에서 노무현 후보보다 대권 고지에 좀 더 유리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열성적인 노무현 지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 등으로 노무현 후보는 힘을 얻었고 단일화를 계기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를 역전하였고 결국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한편 대선 전날 정몽준이 극단적으로 지지를 철회한 바 있다. 

세 번째,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문재인-안철수’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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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야권의 두 유력 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에 성공했으나 집권에는 실패했다. 투표 결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고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을 배출했다. 최종적으로 박근혜와 문재인의 양자 대결 구도였지만 선거 과정에서는 두 후보와 함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출마 선언 이전부터 그의 출마 여부가 대선 최대 변수로 끊임없이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초기에는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여론조사 2위 수준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문재인 후보에게 따라잡히면서 2~3위를 엎치락뒤치락했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율과 당선 가능성에서 앞서고 있었으나, 계속된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의 실패 끝에 중도사퇴를 선언하고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원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최대 화두는 정권의 연장인지, 교체가 되는 것인지가 되는 듯하다. 남은 기간 중에도 단일화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도 있는 가운데 현재 대선 후보들은 막판 레이스를 질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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