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정우, 한성현] MBC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 주인공 박차돌의 실제 모델이며 BJ 소닉으로 유명한 황효진 대표. 하지만 이제는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대표로 더 유명하다. ‘스베누’는 슈즈의 ‘S’와 불멸의 새 ‘베누’의 합성어, 영원불멸의 신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으로 국내 신발 브랜드의 퀄리티를 한 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릴 적 ‘새색시’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수줍음이 많았고, 군대에서는 관심병사로 된 적일 있을 만큼 많은 경험의 소유자 황효진 대표.

오늘 아이디언 인터뷰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스베누의 황효진 대표를 만나 그의 진솔한 이야기와 국산 신발 브랜드 ‘스베누’의 설립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part.1 황효진 그리고 BJ 소닉

- 게임 방송 BJ 그리고 스베누의 대표 황효진씨. 먼저 독자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2006년부터 BJ 소닉이라는 이름으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중계하고, 지금은 게임만큼 신발을 사랑하며 신발에 미쳐(?) 있는 황효진이라고 합니다.

▲ MBC드라마 '장미빛 연인들' 실제 주인공인 '스베누' 황효진 대표

- 이력이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거죠?
2006년부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중계하는 BJ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제 소심한 성격을 개선해 보려고 인터넷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거든요. 오죽하면 별명이 ‘새색시’였을까요. (웃음)

▲ 이제는 'BJ 소닉'이라는 닉네임보다 '스베누'의 대표로 더 많이 알려졌다.

- 독특하고 재미있는 별명인 것 같네요. 그렇다면 왜 스타크래프트 였나요? 다른 게임도 많았을 텐데..?
고등학교 3학년 당시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였어요. 다른 것을 할 줄 몰라 선택한 게임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애드리브로 보일만한 말까지 밤새 대본으로 준비 했었으니까요. 결국 2006년 당시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도 인터넷 포털 검색어 1위가 됐죠. ‘타이밍’이 좋았던 거 같아요.
2007년에 팬클럽이 10만 명 정도가 넘었고요. 지금은 그래도 9만 6천 명 정도 팬분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웃음)

- 인기를 많이 얻기도 했지만 악플도 많았을 텐데
(웃음) 네 그렇죠. 지금도 e스포츠 기사가 나오면 항상 ‘엄마 나 스포츠하고 오게 1000원만 줘봐’라고 달리는 댓글이 있어요. “나 지금 천 원가지고 피씨방 간다”라는 내용을 비유하면서 재미있는 댓글들이 많이 달리는데 저는 이것이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하나의 ‘e스포츠’ 문화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 지금도 스타1 리그 후원 및 주최하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왜’ 하는 건가요?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지금 저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줬어요. 게임이 없었으면 저는 서울에 올라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직도 사실 신기해요.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시골에 살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말이죠.

part.2 관심병사였던 황효진, 신발을 팔기 시작하다?

- ‘BJ 소닉’으로 인기를 끌다 갑자기 ‘신발팜’이라는 사업을 했어요. 이유가 뭔가요?
군대에 있을 때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어요.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거죠. 헤어지면서 그 친구가 진지하게 “너를 기다려도... 전역을 하면 비전이 없을 것 같아”라고 말이죠. 이등병 때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서 한 달동안 군대에서 관심병사가 됐어요.(웃음) 그때 많은 생각을 했죠.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 사업을 해봐야 겠다’고 말이죠. 쓴 아픔이었지만 결국 저한테 좋은 약이 된 거죠.

- 근데 왜 하필 신발인가요?
사실 ‘신발’에 ‘신’자도 몰랐어요. 지금은 온라인으로 주문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이 고향인 저는 (웃음) 19살 때까지 집 주변에 편의점도 없었을 정도로 시골에 살았거든요. 신발뿐 아니라 특히 브랜드화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죠.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신발은 신잖아!’ 누구나 신발은 필수적으로 신거든요. 게다가 브랜드 운동화는 가격도 비싸잖아요? 그래서 ‘신발 장사를 하면 망하지는 않겠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죠.

▲ 2011년 '신발팜'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산 신발 브랜드인 '스베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오, 그렇군요. 그래도 ‘신발팜’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부모님이 많이 반대를 했었죠. 당시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도 많이 반대를 했어요. 반대를 많이 했던 이유 중 하나가 ‘타 업체들과 경쟁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가격경쟁도 힘들고, 자금도 없고.. 우려처럼 실제로 정말 많이 힘들었죠.

- 빚이 엄청났다고 들었어요?
사실 처음에는 잘 됐어요. 물건도 잘 나갔고요. 위탁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했고, 10억 정도 수익이 생겼는데 그때 욕심이 붙어서 약간의 무리수를 둔 거죠. 한 브랜드에서 출시한 신발이 있었는데, 무조건 된다는 생각에 국내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다 사들였어요. 그런데 막상 판매를 시작하니까 결과는 정 반대였죠. 그래서 10억의 빚을 떠안게 됐죠. 정말 너무 힘들 더라고요.

part.3 황효진, 독자적 브랜드를 내다.

- 신발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또 신발을 판매할 생각을 한 거죠?
욕심이 생겼어요. 아니 ‘오기’라고 정정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을 해서 나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다시 신뢰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죠. 무슨 생각으로 그런지 아직도 웃기지만 당시 7개월 동안 전국을 다 돌아다니면서 60명의 개인 투자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투자를 받았어요. 500만 원을 투자한다고 하는 사람만 생겨도, 직접 해당 지역으로 내려갔죠. 그렇게 결국 10억의 투자를 받았어요.

- 10억이라..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10억 투자 받기 쉬운데?’라는 생각 들 것 같아요.
네? 아니에요. 정말 힘들었어요. (한숨) 당시 부장님하고 같이 다녔는데요. 정말 목숨 걸고 일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약속을 전화로 잡고, 지방에 내려갔는데. 전화가 안 되는 거예요. 결국 투자자는 만나지도 못하고 허탈하게 올라왔죠. 당시 돈이 없어서 항상 휴게소에서 300원짜리 밀크커피를 마셨어요. 끼니를 해결한 거죠.(웃음) 근데 그날은.. 부장님이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마음이 여리시거든요.

- 대표님도 함께 우셨나요?
아니요. 저까지 눈물을 보이면 부장님이 포기하실 것 같아서 울 수가 없었어요. 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죠. 저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0억 투자를 받는데 성공을 했죠.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 수많은 좌절이 있었지만 그만의 추진력으로 국내에는 없는 스타일의 신발인 '스베누'를 만들게 되었다.

- 투자 받은 10억, 어떻게 사용했나요?
우선 제일 먼저 8억 5천 정도를 빚 갚는데 사용을 하고 1억 4~5천을 가지고 부산 내려가서 스베누를 만들게 되었죠. 스베누.. (휴우...) 참 어렵게 탄생됐습니다. (웃음)


파란만장한 그의 경력에 결국 탄생한 ‘스베누’. 아이디언 인터뷰 2편에서는 ‘스베누’의 첫 시작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자세하게 다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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