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581년 북주(北周)에서 수왕조로 새롭게 중국이 통일 되면서, 고구려와 수나라는 외교사절을 파견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평화적인 관계를 수립·유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요서쪽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와는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었고 영양왕(26대, 590~618)도 이에 수나라와의 격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양왕은 말갈족과 함께 요서를 선제공격(598)하였다. 이에 수나라나의 문제는 3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려고 했었으나 돌아온 사람이 열의 하나, 둘 정도로 대 실패를 하게 된다. 이에 문제는 권위를 잃고 결국 태자 광에게 시해된다.

이 태자 광이 수의 양제다. 수양제는 문제를 죽음으로 몰로 가게 된 원인인 고구려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만주벌판을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고 고구려가 수를 상대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는 수나라가 진정으로 중국을 통일했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수나라는 611년 양제가 직접 고구려 침공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수나라는 무려 200만 대군이라는 엄청난 수의 부대를 출전시켰다.

하지만 이 대군은 요동성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요동성의 고구려군이 강하게 반항하자 그 수많은 대군을 끌고 온 양제도 요동성을 뚫을 수 가 없었다. 이에 초조해진 양제는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 등을 지휘관으로 한 30만5천명의 별동대를 편성해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직접 공격해 대세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별동대는 고구려군의 복병들에 고전하면서 겨우 평양성 30리 지점에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수나라 지휘부 내부의 불화와 병사들이 지급받은 개인장비 및 군수품이 과중해 중도에서 몰래 버린 것에 따른 물자부족 등으로 수군은 더 이상의 진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수나라의 이런 사정은 고구려의 대모달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간파당하게 된다. 이에 고구려는 그들을 고구려 깊숙이 유도해 한계상황에 처하게 했다. 극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 수나라 군에게 을지문덕은 다음과 같은 5언시를 보낸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도다.
그대 전쟁에 이겨 이미 공이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이 시는 겉으로는 우중문을 칭찬하는 말이지만, 시 속에 담긴 뜻은 그를 야유하는 소리였다. 지금 고구려 깊숙이 공격해 왔지만 실상은 너희가 포위되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알려준 것이었다.

수나라는 그때서야 고구려의 진짜 전략을 알게 되었고, 군사들이 버리고 오느라 군량도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공격을 해봤자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아 퇴각을 결정했다. 이에 을지문덕은 퇴각하는 적을 공격하기 시작해 수나라군을 살수에 이르게 했다. 살수는 현재 청천강이라고 불리는 강으로 적군이 이 강을 반쯤 건널 무렵 을지문덕은 미리 상류를 막아놓았던 둑을 터뜨렸다. 그러자 갑자기 불어난 물에 쓸려가는 자, 허우적거리는 자 등 수나라군이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을지문덕은 총공격을 감행하여 물속의 수나라 군을 화살과 칼과 창으로 찔러 죽였다.

30만 5천의 수나라 군대는 살수에서 무참히 패배하여 요동 지역까지 살아서 돌아간 자가 불과 2,700명에 불과했고 수나라군이 가져왔던 그 많던 군수물자와 공격무기들도 전부 빼앗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기가 막힌 심리전과 더불어 지역에 대한 특수성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은 오늘날 군대의 전투, 전략에도 매우 큰 성공사례로 남아 참고가 되고 있다. 그 후에도 수나라는 고구려에 지속적인 침공을 하였으나 고구려의 강력함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무리한 고구려 침공 때문에 민심을 잃은 수양제는 결국 내부의 반란으로 인해 죽게 되고 중국을 통일했던 수나라는 불과 37년 만에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현재 강대국 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 고구려 민족은 강대국에게는 한층 더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기개를 갖추고 있었다. 고구려의 자부심과 자신감, 용기를 갖고 외교관계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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