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할린 동포의 귀경길 
[카드뉴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사할린 동포의 귀경길 
  • 보도본부 | 박진아 기자
  • 승인 2021.12.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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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박진아] 오지 않을 귀국선을 기다리며 망망대해만 바라 보길 수십 년. 사할린에 고립된 채 가슴에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에 의해 러시아 남사할린으로 강제 이주된 조선인 15만여 명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화태(華太). 일본 말로는 가라후토라고 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일본 땅이었지만, 이전에는 제정 러시아 땅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사할린입니다. 그중 절반이 일본 영토가 된 것은 1905년 러일 전쟁에 따른 강화조약 때문이었는데요. 승전국 일본은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을 차지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자,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해 관알선, 징용 등의 형태로 조선인들을 남사할린으로 이주시켰습니다. 해방 무렵에는 강제 징용된 노무자와 그 가족의 수가 약 4만 3천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항구도시 코르사코프는 귀국선을 타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미-소협정으로 일본인 29만 3천명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한 사할린 동포들은 무국적자가 되었고, 이들을 태워갈 귀국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해방이 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해방 후 한반도는 냉전의 각축장이 돼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결국 남과 북으로 분단됩니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들의 상당수가 남한 출신이다 보니,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귀국 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남한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기에도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냉전 체제가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한국, 소련, 일본 정부는 외교 교섭을 통해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에 대해 합의점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1992년 역사적인 영주 귀국이 시작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무려 47년 만이었습니다. 

2021년.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동안 정부 지원으로 사할린동포 1세(1945년 8월 15일까지 사할린에서 출생했거나 사할린으로 이주한 韓人) 영주 귀국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지원 대상과 범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이산(離散)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별법 시행 이후 영주 귀국 대상이 사할린동포와 배우자, 직계비속 1명과 그 배우자로 영주 귀국 대상자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사할린에 남겨진 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사할린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한번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1945년 일제강점기는 끝났지만, 2021년 사할린 동포의 귀성길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영주귀국 : 4,742명, 모국방문 : 18,602명, 8,335명, 2021. 12. 10.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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